19살 신인 투수에게 선발 자리를 내줬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불펜 에이스로 우뚝 섰다. KIA 사이드암 투수 임기영(30)이 불펜로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며 의미 있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임기영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지난 2017년부터 KIA의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그해 선발 8승을 거두며 통합 우승에 기여한 그는 지난해까지 6년간 선발을 맡았다. 2020년 개인 최다 153이닝을 던지며 9승을 올렸고, 지난해에도 26경기 4승13패로 승운이 따르지는 않았지만 129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4.24로 5선발로 준수한 성적을 냈다.
그러나 올해 임기영은 구원으로 보직을 옮겼다. 올해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입단한 좌완 신인 윤영철(19)과 시범경기까지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했지만 밀렸다. 윤영철이 5선발로 낙점되면서 임기영은 롱릴리프로 시작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임기영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고, 이제는 KIA 불펜에 없어선 안 될 투수로 거듭났다.
올 시즌 41경기에서 순수 구원 최다 59이닝을 던지며 1승1패2세이브11홀드 평균자책점 2.44 탈삼진 42개 WHIP 0.88 피안타율 1할8푼7리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 WHIP, 피안타율 모두 커리어하이 기록. 2이닝 이상 멀티 이닝이 11번이나 되며 3연투 1번에 2연투 9번으로 누구보다 자주 나와 많이 던지고 있다.
임기영은 “저만 고생하는 게 아니고, 다 고생하고 있다. 체력 관리를 잘하려고 한다. 잘 먹고, 잠도 잘 잘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끔 트레이닝 코치님께서 주는 웨이트나 러닝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있다”며 “시즌 초반부터 중간에서 긴 이닝을 던져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많이 던지면 그만큼 팀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선발에서 빠진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선발에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범경기 때부터 (윤)영철이가 선발로 가고 내가 중간에 가면 팀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미리 준비했다. 작년에도 중간을 몇 번 했었는데 여기서 잘하면 제 가치도 올라간다는 생각으로 좀 더 집중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돌아봤다.
임기영의 말대로 KIA는 마운드 안정을 이뤘다. 5선발로 들어간 신인 윤영철이 16경기(80⅓이닝) 7승4패 평균자책점 3.81로 자리잡았고, 임기영이 불펜 에이스로 거듭나면서 양쪽 모두 전력이 상승했다. 팀 평균자책점이 지난해 6위(4.20)에서 올해 3위(3.89)로 올랐다. 특히 구원 평균자책점이 7위(4.70에서 2위(3.33)로 눈에 띄게 안정됐다.
임기영이 불펜의 중심을 잡아준 게 크다. 그는 “성적이 좋은 자리가 제 자리라고 생각한다. 투수라면 선발이 제일 욕심이 나긴 하는데 지금은 제 위치에서 팀이 원하는 방향으로 던지는 게 맞다. 무조건 팀 성적이 나야 하고, 거기에 맞춰야 제 가치가 올라간다. 개인 성적이나 욕심보다 팀 성적이 첫 번째”라고 거듭 강조했다.
선발과 불펜은 경기를 준비하는 루틴부터 투구 방법까지 다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임기영은 “선발을 할 때는 그날 아무 것도 안 먹는 스타일이었는데 불펜은 매일 경기에 나가야 하다 보니 경기 전에도 밥을 먹고 한다”며 “선발일 때는 5회 이후 타선이 3바퀴 돌 때부터 많이 맞아나갔다. 지금은 타선이 한 바퀴 돌기 전 제일 자신 있는 구종으로 승부하다 보니 장타나 정타가 줄어든 것 같다”고 변화를 이야기했다. 올해 59이닝 동안 피홈런이 단 하나에 불과하다.
“선발은 1경기 못 던지면 4~5일 다음 경기 잘 던져야겠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 중간은 오늘 못 던져도 내일 바로 던질 수 있는 게 좋다”는 임기영은 “우리 불펜에 좋은 투수가 워낙 많다. 주자를 깔고 내려가도 뒤에 투수들이 막아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 서로 그런 생각으로 하다 보니 결과도 좋게 나온다”고 동료들에게도 고마워했다. KIA는 올해 승계주자 실점률도 3위(34.6%)로 낮다. 임기영을 중심으로 불펜이 든든히 뒷받침하면서 KIA는 7월 이후 15승6패1무로 7할대(.714) 승률을 거두며 5위 싸움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