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대체 외국인 선수 애런 윌커슨(34)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퇴출된 댄 스트레일리(35)와 불과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패스트볼 구위나 구속에서 특자엊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선발 투수로 경험이 풍부하다고 했지만 당장 올해 트리플A 성적도 14경기(6선발) 평균자책점 7.09(47이닝 34자책점), 12피홈런에 달했다. 극단적인 타고투저의 무대인 트리플A 퍼시픽코스트리그에서 뛰었다고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는 기록 자체가 특출나지 않았다.
하지만 윌커슨은 트리플A에서의 부진에 대해 로봇 심판, 피치 클락 등 새로운 규정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트리플A에서 로봇 심판이나 자동 스트라이크 등 새로운 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라면서 “이제 한국에서 리얼 베이스볼을 할 수 있게 돼서 좋고 여기서 경쟁하고 승리하고 싶다”라며 의욕을 다진 바 있다.
진짜 야구의 무대로 온 윌커슨은 날개를 달았다. 이미 지난해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에서 아시아 무대를 경험한 게 있어서 그런지 적응 기간 자체가 사실상 전무했다. 지난해 5월 일본 무대에서는 4경기 3승1패 평균자책점 1.04(26이닝 3자책점) 18탈삼진 4볼넷 피안타율 .198의 성적으로 센트럴리그 월간 MVP를 수상했던 경력자는 한국 무대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KBO리그에 연착륙하고 있다.지난달 26일, 12연승에 도전하던 두산을 상대로 한국 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5이닝 6피안타 2볼넷 3탈삼진 2실점의 역투를 펼쳤다. 기세고 오를대로 오른 두산 타선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파고 들었고 결국 두산의 12연승을 저지하는 값진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1일 NC전에서도 6이닝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3실점, 퀄리티 스타트 피칭을 펼쳤다. 수비진에서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은 실수와 불운이 없었다면 더 나은 피칭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6일 만만치 않은 타선의 SSG를 상대로 7이닝 1볼넷 6탈삼진 무실점, 노히터 완벽투를 펼쳤다. 이후 구승민 김원중과 함께 KBO 역대 3번째 팀 노히터라는 대기록의 일원이 됐다.
계산이 서는 안정적인 피칭의 비결은 적은 볼넷이다. “8000m 날아가는 홈런보다 볼넷을 주는 게 더 싫다”는 자신의 신조가 마운드 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싸움닭의 기질을 발휘하면서 에이스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어떻게든 승부를 펼치는 게 강점이다. 18이닝 4볼넷으로 9이닝 당 2개 꼴이다. 3볼 상황까지 잘 가지 않고 빠른 카운트 내에서 공격적으로 승부를 펼치려고 한다. 지난 6일 7이닝 노히터를 기록한 SSG전에서도 6이닝 퍼펙트 이후 추신수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아쉬움을 곱씹었다.
트리플A 무대에서도 410⅓이닝 119볼넷으로 9이닝 당 2.61개,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도 70⅔이닝 21볼넷으로 9이닝 당 2.67개의 볼넷만 내줬다. 볼넷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을 고수하고 제구력을 과시하면서 150km가 넘는 압도적인 구위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효율적이고 압도적인 피칭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볼넷이 싫은 싸움닭은 팀을 승리로 이끌고 팀 노히터라는 대기록까지 이끌었다. 윌커슨은 “팀의 상승세를 위해서 왔다. 더 높은 순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앞서 두 번의 팀 노히터를 달성한 2014년의 LG, 2022년의 SSG는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LG는 감독 중도 사퇴라는 최악의 분위기를 딛고 수습해서 기적을 일궜다. 2020년의 SSG는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의 우승을 이끌었다. ’팀 노히터=가을야구’라는 진기록은 여전히 도전 중이다.
43승49패, 여전히 5할 승률에서 -6까지 뒤쳐져 있고 5위와 승차도 5.5경기 차이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중위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롯데도 일단 윌커슨의 대활약으로 분위기 반등의 모멘텀을 가져왔다. 의지가 불타오르는 푸른 눈의 싸움닭은 팀의 가을야구 전투에서 얼마나 많은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