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화의 1번타자’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한화 외야수 이진영(27)이 트레이드 2년차를 맞아 잠재력을 터뜨리며 팀에 없어선 안 될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화가 6월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이진영의 1번 타순 전진 배치부터 시작됐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1~5번 타자는 장타 툴이 있는 선수들이 있어야 상대 배터리와 벤치를 압박할 수 있다”며 이진영을 1번으로 낙점했다. 정은원, 노수광, 이원석 등 1번타자들이 타격이 기대에 못 미친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책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고, 두 달째 고정 타순이 됐다.
지난 6월10일 대전 LG전부터 한화의 31경기 중 30경기를 1번 타자로 붙박이 선발출장 중인 이진영은 이 기간 타율 2할5푼9리(116타수 30안타) 4홈런 20타점 OPS .803을 기록 중이다. 타율은 높지 않지만 볼넷 24개, 몸에 맞는 볼 2개를 더해 출루율도 3할8푼1리로 높다.
이진영은 “저도 처음에 1번 타순에 나갈 때는 의아했다. 2군에서는 1번으로 나가긴 했지만 2군에선 거의 처음이다. 대체자로 몇 번 치고 빠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까지 나가고 있다”며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최대한 많이 나가면서 뒤에 잘 치는 타자들에게 득점권 찬스를 연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지난 2016년 2차 6라운드 전체 58순위로 KIA에 지명된 이진영은 지난해 4월23일 트레이드로 한화에 넘어왔다. KIA에 비해 외야가 무주공산이었던 한화에선 빠르게 기회가 왔다. 지난해 5월에만 홈런 6개를 터뜨리며 존재감을 보여줬지만 반짝 활약이었다. 6월 이후 변화구에 약점을 드러냈고, 2군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최종 성적은 70경기 타율 2할(220타수 44안타) 8홈런 31타점 17볼넷 90삼진 OPS .627.
지난해 경험이 교훈이 됐다. 이진영은 “작년과 달리 타석에서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 장타 욕심을 줄이니 나쁜 공에도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공을 좀 더 잘 보고, 변화구 하나를 더 참을 수 있게 됐다”며 “작년에는 못 치고 있으면 폼에 대한 고민이 컸다. 경기를 해야 하는데 너무 안 맞는 것에 깊게 생각해 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은 어제 경기 못해도 오늘 다시 잘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감독님께서 하루 못해도 다음날 기회를 주시니 준비를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5월 1군 콜업 후 대타, 플래툰 그리고 선발로 조금씩 비중을 늘렸다. 시즌 전체 성적도 64경기 타율 2할5푼1리(195타수 49안타) 6홈런 31타점 33볼넷 68삼진 OPS .762로 준수하다. 타격뿐만 아니라 우익수 수비에서도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으로 주자 진루를 억제하고 있다. 올해 외야 보살이 5개로 팀 내 1위, 리그 전체 3위에 빛난다.
한화는 오랜 기간 외야수 육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지난해 트레이드를 통해 이진영을 데려왔다. 외야 뎁스 강화 차원이었다. 이진영이 시행착오 끝에 이적 2년차에 공수겸장 외야수로 한 자리를 꿰차면서 한화의 오랜 고민이 하나 해소했다. 이진영에게도 한화로의 트레이드가 야구 인생 반전을 이끈 계기가 됐다.
그는 “지난해 트레이드로 와서 마음을 다잡고 엄청 열심히 했지만 실패했다. 실패를 겪으면서 많이 배웠고, 그런 경험이 쌓여 올해 준비를 잘할 수 있었다”며 “수많은 야구 선수 중 주전으로 계속 기회를 받는 선수는 흔치 않다. 그런 기회를 받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작년에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2군으로 갔는데 다신 겪고 싶지 않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절실하게 야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진영의 절실함은 야간 특타로도 나타난다. 타격이 안 풀리는 날마다 야간 특타를 자청하며 독하게 스윙을 돌린다. 특타를 한 다음날 꼭 좋은 활약을 하면서 기분 좋은 징크스가 생겼다. 지난달 21일 생일에도 경기를 마친 뒤 특타를 한 그는 “준비한 플랜이 안 됐을 때 특타를 하면서 다음날 경기를 준비한다.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1군에서 힘든 게 낫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