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며칠 전이다. 수원 KT전 때였다(7월 26일). 그러니까 트윈스가 5연패 하던 경기다. 선발 임찬규가 초반부터 흔들렸다. 2회 황재균의 2루타, 배정대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허용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비틀거림은 계속된다. 안타(김민혁)와 볼넷(김상수)으로 또다시 2사 1, 2루다. 타석에는 앤서니 알포드다. 하나 더 맞으면 걷잡을 수 없다. 노심초사. 좌불안석. 조심스러운 1구 1구다. 슬라이더, 체인지업…. 요리조리 유인구로 함정을 판다. 하지만 타자는 대꾸하지 않는다. 카운트만 자꾸 불리해진다.
그때였다. 보다 못한 벤치가 부글거린다. 염경엽 감독의 못마땅함이다. 포수 박동원에게 강한 신호를 보낸다. 여러 가지 동작으로 된 시그널이다. 두 주먹을 마주치고, 양손으로 둥근 원을 그린다. 그걸로도 부족하다. 역시 두 손으로 가운데 길을 내는 동작을 보탠다. ‘피하지 말고, 승부해라’ ‘스트라이크 던져라’ ‘그냥 가운데로 넣어라’. 그런 의미가 명확한 마임이다.
결국 알포드를 우익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6구째 직구(139㎞)를 복판에 꽂아 이닝을 끝냈다. (아시다시피 이 경기의 최종 스코어는 4-3이었다. 연장 12회 승부 끝에 트윈스가 패했다.)
어제(28일) 잠실이다. 여러 가지로 관심을 끄는 라이벌 대결이다. 베어스의 11연승은 끝났다. 하지만 아직은 여력이 남아있다. 불씨만 있으면 타오를 기세다. 트윈스는 반대다. 5연패는 벗어났지만, 안심은 이르다. 이것저것 걱정거리가 한가득이다.
특히 선발 매치업이 주목된다. 한쪽은 돌아온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다. 뛰어난 구위로 안정적인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최근 5연승의 호조다. 반면 상대는 다르다. 케이시 켈리는 예전 같지 않다. 바라보는 시선에 불안감도 담겼다. 끊임없는 교체설에 시달린다. 어쩌면 고비가 될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 게임이다. 초반부터 불꽃이 튄다. 1회 초 오스틴 딘의 투런포가 터졌다. 켈리가 2점의 덤을 얻고 시작한다. 그렇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긴장된 초반이다. 첫 타자는 허경민이다.
여기서 특이한 장면이다. 포수 박동원의 제사다. 움직임이 없다. 사인을 내고 버젓이 가운데 앉아 있다. 별스러운 일이다. 보통은 자리를 옮긴다. 안쪽이나 바깥쪽, 공이 올 (예상)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래야 효율적이다. 빠르고, 변화가 큰 투구를 잡으려면 그게 쉽다. 프레이밍(미트질)에도 유리하고, 좌우 활용폭도 커진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앉는 자리만이 아니다. 박동원의 미트(글러브)도 한복판에 고정이다. 사인 교환이 끝나면 포수는 표적을 설정해 준다. 원하는 자리에 미트를 대고, 투구 위치를 정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없다. 마치 ‘그냥 가운데로만 던져’ 하는 신호 같다. 웬만한 레벨의 사회인 야구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6년 전이다. 2017년 한국시리즈가 떠오른다. 타이거즈와 베어스의 일전이었다. 2차전은 1-0 승부였다. 9회 투 아웃까지 살얼음판 스코어다. 뒤진 두산의 마지막 타자는 양의지다. 마운드에는 선발 양현종이 버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고 있다.
사인 교환이 끝났다. 포수(김민식)가 바깥쪽으로 옮겨 앉는다. 그러자 투수가 정색한다. 중계 화면에도 입 모양이 읽히는 명확한 한마디다. 그리고 동작이다. “빠져 앉지 마. 빠지지 마.”
나중에 양현종이 이렇게 밝혔다. “그때 공에 힘이 없었어요(120구째). 아마 민식(포수 김민식)이 입장에서는 장타가 걱정됐을 거예요. 타자가 양의지 선배였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더 어려운 승부가 될 게 뻔했죠.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어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양현종은 이 경기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타이거즈도 그 해 우승을 차지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감독이라는 자리는 참 어렵다. 내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다.” 1위 팀 감독 염경엽의 하소연이다.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결정적인 고비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맞은 5연패다. 충격은 상당했다. 여론의 비판과 압박은 점점 강도가 높아진다.
잘 하지 않던 선수단 미팅도 소집했다. 위축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북돋웠다. 그중 하나가 피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유인구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어쨌든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 그래야 투수도 살고, 야수들도 덜 지친다.
“빠져 앉지 마라.” 승부는 필연이다. 돌아갈 곳은 없다. 어차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1위를 지키려면. 정상에 오르려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양현종이 입증했던 방식이다. 그리고 트윈스가 입증해야 할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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