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경험이 없어 우려를 샀던 이승엽 감독은 준비된 감독이었다. 국민감독도 KBO리그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이끈 명장도 못한 위업을 초보감독 이승엽이 해냈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 2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9차전에서 8-5로 승리했다.
두산은 3연전 기선제압과 함께 파죽의 11연승을 달리며 시즌 44승 1무 36패를 기록했다. 11연승은 종전 10연승(2000년 6월 김인식 감독, 2018년 6월 김태형 감독)을 넘어 베어스 구단 창단 최다 연승 신기록이다. 베어스 통산 5284경기 만에 최초의 기록이 탄생했다.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 국내 사령탑 부임 첫해 최다 연승 기록도 경신했다. 1997년 LG 천보성 감독, 1999년 한화 이희수 감독, 2000년 LG 이광은 감독의 10연승을 넘어 11연승에 도달했다.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감독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2008년 롯데 사령탑으로 부임해 11연승을 이끈 바 있다. 이승엽 감독이 역대 감독 데뷔 시즌 최다 연승 타이기록을 해냈다. 이제 1승만 더하면 KBO리그 사령탑 부임 첫해 최다 연승의 새 역사를 쓸 수 있다.
경기 후 만난 이승엽 감독은 “선수들이 인터뷰를 해야 하지 않나”라며 “두산 최초 11연승이 쓰여진 전광판을 보니 대기록을 달성한 실감이 났다. 그러나 경기할 때, 끝났을 때는 크게 생각 안 했다. 마지막에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러 가는데 전광판 보고 11연승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때는 기분이 좋았다”라고 덤덤한 소감을 전했다.
지난해 창단 첫 9위 수모를 겪은 두산은 팀을 쇄신할 적임자로 ‘국민타자’ 이승엽을 택했다. 선임 당시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통산 홈런 1위(467개)를 비롯해 현역 시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보낸 이승엽이지만 2017년 은퇴 후 현장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해설위원, KBO 홍보대사, 야구장학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꾸준히 야구 발전에 기여했으나 이는 감독, 코치 등 지도자와는 별개의 영역이었다.
그런 그가 기라성 같은 선배 감독들을 넘어 베어스 구단과 KBO리그 국내 1년차 감독 연승 기록을 다시 썼다. 이 감독은 “감독 맡은 지 1년도 안 됐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라며 “우리가 이제 조금씩 좋아지는 시점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개막전부터 해서 힘든 시기가 많았다. 그런데 팀이 조금씩 안정이 되고 내가 선수를 알아가면서 기록이 지금까지 왔다. 선수들이 잘해준 것이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모든 평가는 시즌 끝마치고 받아야 한다. 아직 대략 60경기가 남았다. 내일부터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라며 “선수들도 만족 안 하겠지만 스태프들도 만족 없이 조금 더 집중해서 지금 이 좋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 조금 떨어진다면 많이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 모든 평가는 시즌 끝마치고 해 달라”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대기록 달성의 주역으로는 캡틴 허경민을 꼽았다. 이 감독은 “허경민이 너무 훌륭하게 팀을 이끌어주고 있다. 연패가 길어지고 팀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으면 불신이 생기고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길 텐데 지금까지 그런 게 한 번도 없었다. 캡틴을 중심으로 좋은 분위기가 잘 형성되고 있다. 올해 많이 떨어지지 않고 다시 반등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라고 칭찬했다.
이 감독은 26일 잠실 롯데전에서 승리하면 역대 감독 데뷔 시즌 최다 연승 신기록을 수립할 수 있다. 이 감독은 “항상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내일(26일) 우리는 곽빈이 선발투수로 나선다. 시즌 초반에는 야수진이 부진해 투수들이 부담을 느꼈지만 이제는 1, 2점 줘도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던져줬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남겼다.
지난해 9위팀을 11연승을 하는 3위팀으로 변모시키기까지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팬들을 향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 감독은 “앞으로 조금 더 많이 이기면서 팀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팬들이 많은 승리를 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 선수들은 어떤 경기를 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시즌 끝마쳤을 때 정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이르다. 더 달리겠다”라고 남은 시즌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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