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팽팽한 종반 승부다. 스코어 3-3이던 7회 말. 홈 팀의 타순이 좋다. 1사 후 1번 김하성의 타석이다. 브룩스 레일리의 초구에 배트가 번쩍인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시속 166㎞짜리 타구가 3루수를 뚫었다. 루이스 기요르메가 글러브를 댔지만, 그대로 관통한다. 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성이다. (한국시간 8일 샌디에이고 펫코 파크, 메츠-파드리스전)
공은 펜스까지 구른다. 좌익수 토미 팸은 산책 수비다.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공을 따라간다. 주자가 이 장면을 놓칠 리 없다. 2루에 멈출 듯하더니, 돌연 가속 페달을 밟는다. 기습적인 3루 도전이다.
“(메츠 좌익수) 토미 팸은 우리 팀에 같이 있어봐서 잘 안다(2021년). 어깨가 그리 좋은 선수가 아니다. 마침 수비도 천천히 하길래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경기 후 김하성 코멘트)
3루에서 박빙의 승부다. 의외로 송구는 정확했다. 공이 먼저 도달했다. 하지만 타이밍은 타이밍일 뿐이다. 짧은 순간에 몇 차례 반전이 일어난다.
우선은 주자의 스마트한 슬라이딩이 빛난다. 일명 밑장빼기다. 절묘하게 한쪽 팔을 뺀다. 3루수는 완전히 당했다. 태그는 헛손질이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대로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또 한 번 뒤집힌다. 슬라이딩이 조금 넘쳤다. 너무 스피드를 낸 탓이다. 상체가 베이스를 지나친다. 가까스로 버티던 다리와 발이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공간이 생긴다. 베이스에서 떨어진 것이다. 반면 3루수는 집요했다. 글러브가 주자의 왼쪽 정강이 부근을 놓치지 않았다. 아웃 판정이 나온다.
관중석에서는 환호와 탄식이 터진다. 홈 팀은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 주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눈치 없게(?) 다음 타자(후안 소토)가 2루타를 친다. 가만히 있었으면 1점이 올라간 셈이다. 결국 승부는 연장 끝에 파드리스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7회 주루사가 두고두고 한으로 남는다.
그런데 남은 게 있다. 억울함이다. 당시 표정을 보시라. 아웃 판정에 애타게 벤치를 바라본다. 그리고 두 팔을 크게 벌린다. ‘그게 아니라니까’ ‘말도 안 돼’ ‘무슨 소리야’ ‘비디오 판독이라도 해줘’…. 등등의 간절함이 담겼다. 하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3루수가 태그하면서 글러브로 다리를 밀어냈다. 그 바람에 발이 떨어진 것이다. 너무 의도적이었다.” 그다음 얘기가 더 안타깝다. “말이 안 통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경기 후 김하성 코멘트)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밑장빼기로 글러브를 따돌렸다. 그리고 미끄러지면서 다리와 발로 베이스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3루수가 태그하면서 밀어냈다는 말이다. 그것도 고의성이 다분했다는 당사자의 느낌이다.
재생 화면을 보자. 3루수 기요르메 역시 불안정한 자세다. 왜 아니겠나. 속임 동작에 당했다. 이후 왼손의 움직임이 다급하다. 만회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처음에는 손등 부분으로 강하게 들어간다. 이어 마무리 동작에서는 손바닥이 위로 향한다. 마치 주자의 발을 ‘밀어내면서 들어 올리는’ 자세가 된다. 합리적 의심이 샘솟는다.
KBO리그에서도 논란이 됐던 사건이다. 지난 5월의 일이다. LG-삼성의 대구 경기였다. 공교롭게 그때도 7회였다. (김)태군 마마께서 푸른색 어의를 입던 시절이다. 좌익선상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달렸다. 하지만 횡사로 끝났다. 먼저 점령했지만, 슬라이딩하면서 손이 떨어진 것이다.
박진만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다. 2루수 정주현의 글러브가 주자의 손을 밀어냈다는 이의 제기였다. 그러나 인정되지 않았다. 원심은 유지됐다. 물론 박 감독은 승복하지 않았다. 격렬한 항의 끝에 퇴장 조처가 내려졌다.
경기 후에도 여론이 부글거렸다. ‘밀어서 잠금 해제냐’ ‘앞으로 (태그하면서) 매번 몸싸움이 벌어질 판’. 그런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KBO는 이런 해명을 내놨다. “주자의 베이스 터치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고의성 부분을 보다 엄격하고, 세심하게 판단해 심판 판정이나 비디오 판독에 적용할 방침이다.”
미국 진출 선배도 겪었던 일이다. 시애틀 주민 이대호가 희생양이었다. 2016년 7월의 일이다. 6회 큼직한 안타를 때리고 2루까지 달렸다. 그런데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지며 아웃 됐다. 2루수 조나단 스쿱(오리올스)의 태그하는 힘에 밀려난 것이다.
아마 그때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낯설고, 물선 땅에서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억울함에 펄쩍 뛴다. 그래도 조선의 4번 타자다. 영어가 좀 짧으면 어떤가. 할 말은 하고 산다. 2루심에게 굵고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푸시, 푸시(push, push)” 하는 입 모양이다.
이 장면은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됐다. 급기야 반짝이는 말 풍선도 등장했다. 코믹 버전이다. “점마가 밀었다 아이가.” 엠스플 뉴스는 이 상황을 영상과 자막으로 편집했다.
글러브에 밀리고, 말도 잘 안 통하고.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하지만 진짜 안타까운 일은 그다음이다. 홧김에 걷어찬 물통에 발을 다쳤다. “빈 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화가 난 상황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경기 후 김하성 코멘트)
상승세 와중에 겪은 악재다. X레이 검사 결과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통증이 남았다. 구단은 데이-투-데이 명단에 올렸다. 하루하루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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