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메이저리그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도 쳐내지 못했던 홈런 유형, KIA 타이거즈 나성범(34)은 보여줄 수 있었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툴가이 유형의 선수가 운동능력이 전혀 죽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했다.
나성범은 지난 5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정규시즌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 3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해 5타수 4안타(1홈런) 3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팀은 17-3으로 대승을 거두면서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나성범은 1회 결승타 포함해 타석마다 맹타를 휘두르면서 대승을 이끌었고 KIA 타선의 희망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렸다. 올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차출된 이후 복귀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규시즌에 임하는 듯 했다. 종아리가 좋지 않았고 회복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차도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개막전 이후인 4월 5일, 정밀 검진 결과 종아리 근육 손상 진단을 받았고 8주 결장이 확정됐다. 결국 두 달 넘게 재활에 매진한 나성범은 지난달 23일 KT전에 돌아왔다.
2021시즌이 끝나고 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었던 나성범은 고향팀 KIA와 6년 150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미 계약 당시부터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였기에 에이징 커브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연습벌레에 운동중독에 가까운 성실함과 집념을 보여주던 나성범이었고 이러한 노력으로 계약 첫 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지난해 144경기 전경기 출장해 타율 3할2푼 180안타 21홈런 97타점 OPS .910의 특급 성적을 남겼다. 몸값은 다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2019년 주루 플레이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1년을 통째로 건너 뛴 큰 부상을 당했고 또 올해 근육 부상을 당했다. 커리어에서 또 다시 중대한 변수가 될 수 있는 부상일 수도 있었다. 운동능력 하락을 의심해도 그리 놀랍지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나성범은 복귀 후 8경기를 치르면서 그동안 나서지 못했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매 경기 괴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일 경기 4안타 대활약이 포함되어 있지만 8경기 타율 4할6리(32타수 13안타) 3홈런 7타점 OPS 1.222를 기록 중이다. 장타율은 .781는 나성범의 파워툴이 여전하고 이를 뒷받침 해줘야 하는 하체의 운동능력도 여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운동능력과 파워가 여전하다는 증거는 지난 5일 경기 홈런으로 증명했다. 무엇보다 34세의 타자가 20대 초중반의, 신체나이 최전성기의 선수들도 해내기 힘든 장면을 연출했다. 13-2로 이미 승부의 추는 많이 기운 6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앞선 타석에서 김도영이 비거리 130m에 타구속도 171.3km의 초대형 타구에 감탄하고 있던 찰나, 나성범은 경악스러운 타구를 뽑아냈다. 김도영의 타구는 금세 잊혀졌다. 좌완 백승건과 1볼 1스트라이크에서 낮은 코스의 143km 패스트볼을 걷어올렸다. 우중간 담장을 직격하는 타구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이 타구는 속도가 죽지 않고 쭉쭉 뻗어갔고 우중간 담장을 순식간에 넘겼다.
이날 경기를 중계한 스포티비에서 측정한 트랙맨 데이터 결과는 경악하기에 충분했다. 앞서 김도영의 170km대 타구속도도 충분히 빨랐지만 나성범이 기록한 이 홈런의 타구속도는 무려 181.1km에 달했다. 그리고 발사각도가 더 대단했다. 15.4도에 불과했다. 홈런이 나오기에 이상적인 발사각도를 25~30도 안팎이라고 하는데, 나성범은 훨씬 낮은 초저고도로 비행했다. 과장을 보태면 ‘2루수 키를 넘기는 홈런’이었다.
올해 메이저리그 홈런 1위(31개)의 오타니도 올해 때려낸 홈런 중 가장 낮은 발사각이 19도였다. 지난 4월19일(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19도짜리 홈런을 때려낸 바 있다. 타구 속도는 116.7마일(약 188km)였다. 오타니도 하지 못했던 초저고도의 홈런을 나성범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할 수 있었다.
KIA는 나성범이 돌아온 뒤에도 위기에 빠져 있다. 8경기 3승5패. 여전히 9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운동능력이 건재한 나성범이 있기에 KIA는 위안이다. 과연 나성범은 해결사로 KIA의 중위권 경쟁을 이끌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