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감수한 변화가 통했다.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개인 최다 18홈런 타이 기록을 세운 노시환(23·한화)의 폭풍 성장이 KBO리그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노시환은 지난 5일 대전 롯데전에서 괴력의 투런 홈런을 폭발했다. 1-1 동점으로 맞선 5회 2사 1루에서 롯데 선발투수 나균안의 2구째 한가운데 높게 들어온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146km 직구를 벼락 같은 스윙으로 맞혔고, 타구는 낮은 탄도를 그리며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가장 깊은 중앙 담장을 순식간에 넘어갔다. 타구 속도가 시속 173km로 측정될 만큼 총알같이 날아갔다. 비거리는 125m.
박병호(KT)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몸통 회전으로 상체를 젖힌 채 풀스윙으로 만든 홈런. 임팩트 순간에는 홈런이 될 줄 몰랐는데 타구가 생각보다 멀리 쭉쭉 뻗어나갔다. 스스로도 꽤 놀란 기색이었다. 경기 후 노시환은 “넘어갈 줄 아예 몰랐다. 홈런을 치면 손맛이 있는데 탄도가 낮았고, 대전에서 센터를 넘긴 기억이 거의 없다. 대전 센터가 엄청 멀다. 센터에서 잡히거나 중견수 키를 넘어가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담장을) 넘어가더라. 저도 놀랐다”고 말했다.
홈에서 펜스까지 거리가 122m로 멀고, 높이도 4m나 되는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센터로 홈런을 치기 힘든 구장이다. 노시환이 대전에서 중월 홈런을 친 것은 지난 2020년 6월13일 두산전(유희관 상대 비거리 130m), 2021년 4월24일 LG전(김대현 상대 비거리 125m), 지난해 4월23일 SSG전(이반 노바 상대 비거리 125m)에 이어 4번째.
이날 홈런이 시즌 18호인 노시환은 이 부문 1위 최정(SSG·19개)에 1개차 2위로 바짝 따라붙었다. 올해 74경기 모두 출장하며 타율 3할1푼5리(295타수 93안타) 18홈런 54타점 출루율 .394 장타율 .556 OPS .950을 기록 중인 노시환은 홈런뿐만 아니라 타점, 장타율, OPS도 최정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최정 추격자다.
지난 2021년 107경기 458타석에서 기록한 18홈런이 개인 한 시즌 최다였던 노시환은 올해 74경기 335타석 만에 18홈런을 쳤다. 산술적으로 35홈런 페이스. 지난 2008년 김태균(31개)에 이어 15년 만에 한화 소속 홈런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노시환은 “홈런왕 물론 하고 싶죠. 꿈인데”라면서도 “그런 걸 의식하면 항상 잘 안 되더라.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의식하지 않고 하다 보면 좋은 타이틀도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모범적인 답을 내놓았다.
지난 2019년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 입단할 때부터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은 노시환은 지난해 갑작스럽게 ‘홈런 슬럼프’에 빠졌다. 타율은 2할8푼1리로 상승했지만 홈런이 지난해 8월6일 수원 KT전 시즌 6호포를 끝으로 끊겼다. 시즌 마지막 46경기에서 203타석 연속 무홈런 침묵. 원래도 밀어친 홈런이 많은 타자였는데 지난해에는 당겨친 홈런이 1개에 불과했다.
한 선배 선수는 “시환이가 못 치면 우리는 점수가 안 난다. 나이는 어리지만 본인도 그걸 안다. 자기 스윙을 못하고 타점을 내거나 출루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홈런이 나올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큰 것보다 정확성에 중점을 두다 보니 히팅 포인트가 점점 뒤로 갔고, 그게 익숙해지자 시즌 중에는 되돌리기도 어려웠다. 집중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팀의 척박한 환경이 노시환의 성장을 가로막는 것만 같았다.
시련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답을 찾았다. 노시환은 “히팅 포인트가 뒤에 있다 보니 변화구가 앞에서 맞아 넘어가야 하는 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공을 끝까지 보다 보니 타이밍도 더 늦었다”고 정확하게 자가 진단한 뒤 겨울부터 히팅 포인트를 앞당기는 훈련에 들어갔다. 배트를 어깨에 붙이고 있던 준비 자세부터 바꿨다. 배트를 어깨에서 떼고 그대로 든 채 파워포지션에 들어간다. 최대한 빠르게 스윙이 나올 수 있는 폼으로 바꾸면서 히팅 포인트가 앞쪽에 놓였다.
3~4월에는 2홈런으로 시작했지만 흔드리지 않고 유지했다. 5월 7홈런으로 불이 붙었고, 6월 6홈런으로 기세가 이어졌다. 7월 3경기 홈런 3개로 여름에도 홈런이 멈추지 않고 있다. 홈런 18개 중 좌월(6개), 좌중월(6개)로 당겨친 게 12개나 된다. 2021년에는 18홈런 중 좌월(4개), 좌중월(3개)이 7개로 밀어친 홈런이 많았는데 올해는 당겨친 홈런이 눈에 띄게 늘었다. 히팅 포인트를 당긴 효과가 그대로 나타난다.
노시환은 “히팅 포인트를 바꾼 게 크다. 홈런을 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극단적인 변화를 줬는데 지금까지 잘되고 있어 만족한다. 히팅 포인트만 늦지 말자는 생각으로 매일 준비하고 있다”며 “18개가 개인 최다 홈런이었는데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해서 좋다. 요즘 날씨가 확 더워졌는데 체력 관리 잘해서 시즌 끝까지 좋은 흐름을 이어가 전경기 출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