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지 비교를 하고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게 우리들의 일상이 됐다. 야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야구팬들이 제일 많이 하는 논쟁은 ‘추강대엽’ 논쟁이다. KBO리그는 물론 메이저리그, 일본프로야구 무대 등에서 활약한 역대 한국인 타자들의 서열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현 시점에서 정리된 서열은 추신수-강정호-이대호-이승엽, 이른바 ‘추강대엽’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최상위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16년을 활약하며 타율 2할7푼3리 1671안타 218홈런 157도루, OPS .824의 통산 성적을 기록했고 올스타 1회, 20홈런-20도루 3회 등의 족적을 남긴 추신수는 이견이 없는 서열 1위다. 이 부분은 정리가 됐다.
추신수의 뒤를 잇는 2위는 강정호다. KBO리그 최초 유격수 40홈런을 달성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치는 아시아 내야수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2년(2015~2016)이 기준이 됐다. 실제로 강정호는 2015년 15홈런, 2016년 21홈런으로 아시아인 내야수로는 드문 캐릭터와 스타성을 지녔다. 다만 KBO리그 시절 음주사고 이력으로 실형을 선고 받으며 은퇴를 했다.
강정호 다음은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다. 한미일 통산 467홈런, 일본시리즈 MVP, 메이저리그 두 자릿수 홈런의 경험을 쌓았다.그 다음이 KBO리그 최다 467홈런을 기록했고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도 8년 간 159홈런을 기록하는 등 한일 619홈런을 때린 ‘국민타자’ 이승엽이 뒤를 잇는다.
추신수를 제외하면 강정호 이대호 이승엽의 서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이 많고 활약하던 시기와 상황들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단순 논쟁거리다. 그럼에도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야구 팬들의 재미거리다. 이제는 ‘추강대엽’의 서열이 마치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모두 타자로서의 가치만 논하는 이 논쟁, 그런데 최근에는 이 선수까지 논쟁에 진지하게 들어가려고 하는 선수가 등장했다. 메이저리그 3년차 내야수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타자로서는 물론, 야수로서 한국인 최고의 선수 논쟁과 줄 세우기에 가담할 정도의 커리어를 써 내려가고 있다.
현재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3년차 시즌 공수에서 리그 최상위급 선수로 거듭나고 있다. 올해 2루수로서 83경기 타율 2할5푼4리(265타수 68안타) 10홈런 31타점 42득점 14도루 OPS .752의 클래식 스탯을 기록 중이다. 리그 2루수 가운데 상위 11위에 해당하는 OPS다. 구장과 리그 환경을 적용해서 타격 생산력을 나타내는 wRC+(조정득점생산력)는 112로 리그 7위에 해당한다(100이 평균). 김하성은 현재 리그 평균보다 12%나 잘하는 타자다. 메이저리그 3년차에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물론 wRC+의 최고점이 추신수(2013년 150), 강정호(2015년 132)보다는 낮다. 그럼에도 김하성이 이 논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이유는 타자로서의 가치에 더해 수비로서의 가치가 특출나기 때문.
이미 ‘평화왕’이라고 불렸던 강정호의 후계자로 KBO리그에서는 ‘평화왕자’라고 칭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선배보다 더 높은 위상의 선수로 올라서려고 한다. 강정호는 메이저리그 4년 동안 3루수와 유격수로 주로 활약했다. 3루수로 더 많은 경기를 뛰었다. DRS(Defensive Run Saved, 평균 대비 수비로 막은 실점)는 2015년 +3(3루수 +4, 유격수 -1), 2016년 -3(3루수), 2018년 0, 2019년 -1(3루수 -2, 유격수 1)을 기록했다. 총합하면 -1로 리그 평균보다 약간 떨어지는 수비수였다.
하지만 김하성은 리그 평균을 넘어서 리그 최정상의 수비력을 과시하고 있다. DRS 수치에서 주 포지션인 2루수에서 +11을 기록 중인데 이는 리그 1위에 해당한다(2위 휴스턴 마우리시오 듀본 +8). ‘알바’ 개념으로 나서는 3루수로도 +2, 유격수로도 +3를 마크하고 있다. 도합 +16으로 내야수 전체 1위다. 또한 OAA(Outs Above Average, 평균 대비 아웃카운트 처리) 11로 내셔널리그 전체 수비수 중 1위다. 김하성의 수비적 가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더 이상 논쟁하지 않는다.
지난 5일(한국시간) 펫코파크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김하성은 두 차례 ‘서커스 수비’를 펼치면서 홈 팬들과 동료들을 경악시켰다. 유격수 동료 보가츠는 “김하성은 엄청난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 김하성이 수비를 잘 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라면서 “김하성에게 ‘골드글러브를 가져와라, 넌 자격이 있다’”라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밥 멜빈 감독은 “그는 최고의 수비수다”라고 웃었다.
공격에서도 10홈런 15도루를 기록 중인 김하성은 현재 20홈런-20도루 페이스다. 기록을 달성하면 한국인 선수로는 추신수에 이어 두 번째, 그리고 아시아 내야수로는 최초가 된다. 현재 페이스대로면 강정호를 뛰어넘는 최고의 아시아 내야수로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다. 그리고 ‘추강대엽’ 논쟁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내밀며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시간을 점점 당기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