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거금을 주고 포수 최재훈(34)을 붙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재훈이 5년 54억원 FA 계약의 2년차 시즌에 모범생으로 거듭났다. 포수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출루율 리그 전체 4위에 오르며 도루저지율까지 2위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최재훈은 지난 2021년 11월 한화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FA 개장 2일차에 한화가 속전속결로 풀베팅을 하며 최재훈을 눌러앉혔다. 일각에선 ‘오버 페이’ 평가도 있었는데 최재훈에겐 적잖은 부담이 됐다. FA 계약 첫 해였던 지난해 114경기 타율 2할2푼3리 5홈런 30타점 OPS .641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만난 최재훈은 “좋은 FA 계약을 했기 때문에 첫 해부터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팀이 초반에 안 풀리면서 화살이 나한테 오는 느낌이었다. 내 것에만 집중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실수했던 것 같다”고 돌아보며 올 시즌 반등을 다짐했다.
그 다짐이 결과로 나오고 있다. 지난 5일까지 시즌 64경기 타율 2할5푼7리(179타수 46안타) 23타점 OPS .699로 타격이 나쁘지 않다. 특히 볼넷 32개, 몸에 맞는 볼 13개로 출루율이 4할대(.403)에 달한다. 5일 대전 롯데전에 규정타석을 채워 이 부문 리그 전체 4위로 올라섰다. LG 홍창기(.447), 두산 양의지(.428), LG 문성주(.405) 다음으로 한화 팀 내에선 1위.
최재훈은 “타석에서 투수를 괴롭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안타도 좋지만 출루를 하는 게 목표”라며 “오늘(5일)도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나균안(롯데) 상대로 아웃되긴 했지만 많은 공을 던지게 한 걸로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회 첫 타석에서 7구 승부 끝에 좌중간 1타점 적시타로 선취점을 만든 최재훈은 4회 3루 땅볼 아웃됐지만 4연속 파울 커트를 하며 10구 승부로 나균안을 괴롭혔다. 올 시즌 타석당 투구수도 4.2개로 규정타석 타자 53명 중 3위에 빛난다.
결정적인 한 방은 8회 나왔다. 8회초 강재민이 잭 렉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아 3-3 동점이 되면서 경기 흐름이 롯데 쪽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8회말 2사 후 닉 윌리엄스와 권광민의 연속 안타, 도루로 이어진 2사 2,3루 찬스가 최재훈 앞에 왔다. 최재훈은 롯데 필승맨 최준용의 5구째 바깥쪽 커브 공략해 2타점 중전 적시타로 장식했다. 5-3 한화 승리를 이끈 결승타.
최재훈은 “1루가 비어있었지만 상대팀에서 저를 거를 상황은 아니었다. (채)은성이 같은 선수들을 거르지, 제게는 승부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집중했다. (4구째) 직구가 볼이 되는 순간 변화구가 오겠다 싶었는데 노림수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돌아봤다. 승부처에서 베테랑다운 노림수가 적중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자칫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해 결승타를 친 최재훈을 칭찬하고 싶다”고 치켜세웠다.
타격뿐만 아니라 투수 리드와 수비에서도 최재훈의 영향력이 크다. 한화의 팀 평균자책점을 4위(3.92)까지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최재훈은 “우리 투수들이 진짜 좋다. 삼진을 잡는 것보다 뒤에 수비들을 믿고 공격적인 승부를 하자고 한다. 3구 안에 끝내자고 한다. 초구에 안타를 맞더라도 공 1개 던진 것이다. 타자가 빨리 쳐서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리드를 한다”며 “선발들이 잘 던져주니 불펜투수들도 힘이 붙었다. 모든 투수들이 잘 던져주니 포수로서 힘이 난다”고 고마워했다.
도루저지율(37.0%)도 200이닝 이상 소화한 포수 12명 중 양의지(60.9%) 다음으로 높다. 최재훈은 “더 높았는데 떨어졌다”며 웃은 뒤 “부동의 1위인 의지 형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하겠다. 의지형도 언젠가는 떨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 순간에 제가 따라잡겠다.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는 말로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지금 성적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개인뿐만 아니라 팀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공동 4위 NC, 롯데와 격차도 3경기로 좁혀졌다. 최재훈은 “어린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다. 8연승 기간 투수와 야수가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계속 이겼다. 앞으로도 1승, 1승 하다 보면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가을야구도 가능하다. 두산에서 우승 두 번 해봤고, 한화 와서도 2018년 가을야구를 한 번 했다. 그 기분이 뭔지 안다. 어린 선수들이 가을야구까지 하면 더 성장할 것이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