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최고의 재능러가 수비에서도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반시즌 만에 1루 수비 요정에 등극했는데, 또 내년이면 외야수 재전향을 고려해야 한다.
롯데는 지난달 30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윤동희의 끝내기 안타로 1-0 신승을 거뒀다. 3연승을 달리면서 3위 NC와 승차를 0.5경기 차이로 좁혔다.
롯데는 고비마다 수비로 위기를 극복했다. 두산의 본헤드 플레이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수비에서 뒷받침을 해줬기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1번 1루수로 선발 출장한 고승민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고승민은 지난 28일 사직 삼성전에서 여러차례 호수비로 팀의 9-6 승리를 이끌었다. 1루에서 점프 캐치, 다이빙 캐치 등을 해내면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방지했다. 수비에서 기여도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두산전에서도 고승민의 1루 수비는 고비마다 팀 승리의 기반을 차근차근 쌓았다. 기본적으로 다른 내야수들의 캐치를 큰 키와 긴 팔로 잡아내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6회부터 고승민의 집중력 있는 수비가 돋보였다.
롯데는 6회, 선발 박세웅이 정수빈에게 우전안타를 내주고 박계범에게 희생번트를 대줬다. 그리고 김재환에게 볼넷을 내줘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타석에는 해결사 양의지. 일단 박세웅은 초구에 양의지를 1루수 뜬공을 유도했다. 고승민이 뒤로 멀리 가지 않았던 타구를 쫓아가서 잡았다. 그리고 후속 플레이를 재빠르게 했다. 1루 주자 김재환이 리드를 길게 하고 있는 것을 포착하고 곧바로 1루 커버를 들어온 투수 박세웅에게 송구해서 더블아웃을 만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더블아웃으로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하이라이트는 9회였다. 9회 마무리 김원중이 김재환 양의지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두산 벤치는 최근 그나마 장타를 뽑아내고 있던 양석환에게 번트 작전을 지시했다. 1점 싸움에서 벤치의 승부수였다. 그런데 양석환의 번트가 낮게 떴다. 이때 고승민이 달려와서 몸을 날렸고 다이빙 캐치로 양석환의 번트를 노바운드로 걷어냈다. 1아웃. 그리고 두산 2루 대주자 조수행이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은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일어서서 2루에 송구해 더블아웃을 만들었다. 무사 1,2루가 2사 1루가 되는 순간. 후속 강승호를 2루수 땅볼로 처리하며 9회 실점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10회초 선두타자 로하스의 1-2루간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걷어냈다. 장타 차단을 위해 선상 수비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고승민은 재빠르게 반응해서 1-2루간으로 몸을 날렸고 선두타자 출루를 막았다. 결국 10회말 롯데에 다시 기회가 왔고 윤동희의 끝내기 안타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고승민은 이날 경기의 ‘언성 히어로’였다. 구단 공식 MVP는 투수 박세웅, 야수 윤동희였지만 고승민의 기여도도 못지 않았다. 경기 후 고승민은 “중요한 상황에서 집중을 많이 했다. 덕아웃에서 집중할 수 있게 신호를 많이 보내주셨고 옆에 있는 (안)치홍 선배님께서 잘 케어를 해줘서 집중력이 좋았던 것 같다”라면서 “편하게 하는 게 도움이 더 많이 된 것 같다. 실수를 안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더 적극적으로 수비를 해서 실수를 하는 게 더 낫다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라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과정을 설명했다.
구단 수뇌부부터 현장까지. 수비 강화를 위해 쉴새 없는 수비 펑고를 실시하고 있다. 문규현 코치는 더운 여름에도 “펑고 수비 훈련량을 줄일 생각이 없다”라는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도 경기 전 수비 훈련의 비중이 적지 않다. 특히 고승민은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사실상 1루 수비 훈련을 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적지 않았을 터.
2019년 당시 대형 2루수 재목으로 신인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외야수 훈련을 주로 받았다. 하지만 펑고 훈련과 타고난 재능을 더해서 수준급 1루 수비를 펼치고 있다. 고승민은 “매일 훈련을 하고 있다. 상황별로 팀 훈련을 많이 했다. 최근에는 경기 첫날에 수비 훈련을 하다 보니까 우리 팀이 잘 맞는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래리 서튼 감독은 “내년 쯤이면 리그 정상급 1루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는 당장 올해 1루수는 고승민과 정훈 체제로 가져가지만 내년, 고승민은 내년에 다시 외야수로 재전향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1월, 상무(국군체육부대)에서 제대하는 나승엽이라는 또 다른 재능이 돌아오면 고승민은 외야수로 돌아갈 가능성니 높다.
고승민 스스로도 수비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는 “일단 제 수비 자리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제 자리를 잡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어느 자리를 나가든지 제 수비를 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라고 성숙하게 말했다.
고승민의 타격 재능은 이미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이를 살리기 위해 구단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좌투수 상대로 고전하는 경향이 있지만 꾸준히 경험치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의 가능성을 올해 꾸준함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과도기에 놓여 있다.
그런 과정에서 고승민은 1루 수비에서 재능을 과시하며 빠르게 적응했다. 현재의 상태라면 외야수 재전향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상무에서 제대하는, 롯데가 기대하는 최고의 유망주인 나승엽과 경쟁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