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외야수 이진영은 지난달 27일 대전 KT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상대 선발투수 고영표의 체인지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3타석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팀은 승리했지만 이진영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경기 종료 후 야간 특타를 자청했다. 한화의 야간 특타는 당일 경기 선발로 뛰지 않은 젊은 선수들에 한해 의무로 소화한다. 선발출장 선수들은 자율로 하는데 이날 이진영은 “너무 안 맞는다”며 스스로 특타에 나섰다.
절치부심한 이진영은 바로 다음날 경기에서 일을 냈다. 28일 KT전에서 이진영은 5회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승기를 한화 쪽으로 가져온 결정적 홈런. 8회에는 희생플라이로 쐐기 점수까지 만들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이진영은 “특타를 하면 기술적인 것보다 심적인 부분에서 도움된다. 안 좋은 경기를 하면 코치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좋은 기억을 빨리 털어버리며 멘탈 리셋을 하는 데 특타가 즉효약이다.
한화는 최원호 감독 체제에서 특타가 부활했다. 당일 경기 선발 라인업에 들지 않은 4~5명의 젊은 선수들이 특타 대상이다. 지난 5월23일 대전 KIA전부터 이동일을 제외하고 대전 홈에선 경기 후 야간 특타를, 원정에 가선 경기 전 구장 인근 야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특타를 하고 식사 시간에 맞춰 넘어온다.
최원호 감독은 “선발로 자주 안 나가는 선수들은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선수들이 많은 훈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특타의 1차적인 목적”이라며 “그 선수들을 통해 판을 깔아놓으면 (특타 멤버가 아니어도) 원하는 선수가 치게 된다. 자연스럽게 컨디션 안 좋은 선수들이 타격감을 커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이야기했다.
2020년부터 감독대행 기간을 제외하고 올해 5월11일까지 한화 퓨처스 팀 감독을 지낸 최원호 감독은 “20대 초반 대학생 나이 선수들은 분위기에 많이 휩쓸린다. 뭔가 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자연스럽게 따라한다. 퓨처스 팀에 있을 때도 나이 제한을 걸어 25살 이하 선수는 의무적으로 특타를 하게 했다. 이 선수들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5살 넘은 선수들에겐 이런 훈련을 자율로 맡긴다. 최 감독은 “그 나이대 선수들은 스태프가 무리하게 끌고 가는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각자 노하우와 루틴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며 “이런 경험이 없는 젊은 선수들을 자율로 놔두는 것은 방치가 될 수도 있다. 루틴과 노하우가 정립될 때까지는 선수들을 좋은 길로 안내해주는 게 스태프의 역할이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타격 슬럼프로 고생 중인 주전 2루수 정은원도 특타 효과를 제대로 봤다. 지난 주중 대전 KT전에서 2경기 연속 선발 제외 후 야간 특타를 하며 타격감을 잡는 데 주력했다. 최 감독은 정은원을 뺀 자리에 김태연을 선발 2루수로 쓰며 경쟁을 유도했다. 최 감독은 지난 29일 “은원이가 선발로 나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안 좋을 때는 태연이와 경쟁 구도”라면서도 “타격코치가 은원이 특타 치는 모습을 보곤 밸런스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더라”며 기대했다.
비로 하루 쉬고 맞이한 30일 대구 삼성전에서 정은원은 2회 첫 타석부터 우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69경기, 287타석 만에 기다렸던 시즌 1호 마수걸이 홈런이 터진 순간. 덕아웃에서 동료들의 침묵 세리머니에 멋쩍은 미소를 짓던 정은원은 이내 선후배들의 격한 축하에 만감이 교차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은원에겐 그 어떤 홈런보다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한화는 특타 시작 이후 팀 타율(.222→.259), 출루율(.304→.354), 장타율(.311→.371), OPS(.615→.725) 전부 크게 상승했다. 모두 리그 10위로 최하위였는데 특타 이후 기간만 따지면 타율 7위, 출루율 2위, 장타율 5위, OPS 4위로 타격 지표들이 올라왔다. 독이 오른 한화의 분위기는 성적으로 곧 나타나고 있다. 특타 시작 이후 17승13패1무(승률 .567)를 거두며 이 기간 리그 4위.
특히 지난달 21일 대전 KIA전부터 30일 대구 삼성전까지 파죽의 7연승을 달렸다. 지난 2005년 6월4일 청주 두산전부터 6월11일 대전 LG전까지 기록한 뒤 6593일 만의 7연승으로 무려 18년 만이다. 연승과 함께 탈꼴지에 성공하며 8위로 도약한 한화는 5위 키움과 격차도 2경기 차이로 좁혔다. 본격적인 중위권 경쟁에 가세하며 KBO리그 순위 판도를 뒤집을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