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미리 이해를 구한다. 격이 낮은 표현이 포함된 글이다. 빡침, 꼰대질 같은 속된 말이다. 레거시 미디어는 꺼리는 언어다. 하지만 나름의 끌림은 어쩔 수 없다. 상황에 너무나 알맞다. 그만큼 적확한 표현은 찾기 어렵다. 부디 불편함에 대한 양해를 당부한다.
각설하고.
1점을 잃고 시작한다. 1회 말 홈팀의 반격이다. 선두 타자는 감이 좋은 추신수다. 이지강의 초구가 터무니없다. 하필이면 위험한 곳이다. 가장 깊고, 낮은 곳으로 빗나간다. 피할 겨를도 없다. 발을 빼지만 이미 늦었다. 시속 147㎞짜리가 왼발 뒤꿈치를 강타한다. (28일 문학구장, LG-SSG전)
딱 봐도 아픔이 느껴진다.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통증은 주체하기 어렵다. 왼발을 들고 한번 절뚝인다. 그러면서 투수를 응시한다. 몇 걸음 앞으로 간다. 배트는 손에 쥔 채다. 김갑수 구심이 급히 길을 막는다. 뒤따라 포수(박동원)도 다가온다. 마스크를 벗으며 뭔가 한마디 한다.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입술 모양을 보니 “괜찮으세요?” 정도 같다.
한동안 냉각기가 이어진다. 피해자와 트레이너, 둘만의 시간이다. 걸어보고, 발목도 돌려본다. 타석 주변을 크게 한바퀴 돈다. 다시 포수와 접점이 생긴다. 두번째 회담, 즉 문제의 장면이다.
박동원이 또 뭔가를 얘기한다. 그러자 피해자가 벌컥 한다. 화난 표정으로 몇 마디를 쏴붙인다. 그야말로 ‘빡침’의 표현이다. 다시 구심이 중재에 나선다. 조원우 코치도 말린다. 포수는 머쓱한 얼굴이다. 사태는 여기서 일단락된다.
사건은 논란으로 비화한다. 양쪽 팬들이 맞선다. ‘누구 잘못이 크냐’를 따진다.
한쪽은 이런 논리다. ‘맞힌 것은 미안하게 됐다. 사과할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 고의가 아니라는 건 명백한 데 오버한다.’ 반면 반대쪽 주장은 이렇다. ‘가뜩이나 안 좋은 부위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옆에서 자꾸 별일 아니라는 듯이 나서니까 화를 내는 것 아니냐.’
일단 당시를 되돌아보자. 통증을 달래던 피해자가 갑자기 화를 낸다. 사건의 도화선이 있다. 트리거(trigger, 방아쇠)의 순간이다. 박동원이 뭔가를 얘기한다. 손가락 1개를 펴는 동작도 보인다. 추정컨대 이런 말로 보인다. ‘초구 아니냐. 일부러 그런 것 아니다.’
맞다. 1회 투수가 던진 첫 번째 공이다.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닌 다음에야 그럴 리 없다. 맞히려면 볼 카운트, 게임 상황 봐 가면서 해도 충분하다.
고의성에 대한 판단은 너무 쉽다. 며칠 전 일에 비교할 바 아니다. 일부러 맞혔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가해자(?)의 모습만 봐도 명백하다. 이지강은 벌써부터 몸 둘 바를 모른다. 맞자마자 모자를 벗었다. 눈만 마주치면 조아릴 태세다.
다만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양측 논점의 차이다. 맞힌 쪽은 고의성에 무게를 둔다. ‘일부러 그런 것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 언짢아하지 말라.’ 그런 스탠스인 것 같다. 특히 박동원은 포수다. 투수를 보호하려는 의식이 강하다. 괜히 어린 선수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무마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맞은 쪽은 다르다. 고의가 아니라고 덜 아픈 것 없다. 빨리 아무는 것도 아니다. 일단 통증과 함께 화가 치미는 게 1차적인 감정이다. 게다가 예민한 부위다. 부상 이력이 있는 곳이다. 엔트리에서 빠졌다가 복귀한 지 며칠 안 됐다. 깊은 분노가 당연하다. 그렇다고 어린 투수에게 뭐라기는 그렇다. 그래서 박동원에게 그랬는지도 모른다.
1회 말 끝날 때다. 당사자 둘이 다시 만났다.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이뤄진 짧은 미팅이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좋다.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전의 앙금을 털어버리는 모습이다.
(이후 교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언쟁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잘/잘못까지 따질 일은 아니다.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다. 충분히 그라운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선을 넘지 않는 곳에서 적당히 멈췄다. 욕먹을 일도, 서로 비난하며 감정을 소모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럴 수는 있겠다. 스타일 차이, 그러니까 취향에 따른 각자의 호불호는 있으리라. ‘저러는 건 별론데’ ‘안 그랬으면 좋았을걸’ ‘아픈 사람은 오죽하겠냐’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인데’…. 그런 태도, 또는 방식의 다름에 대한 이견이다. 물론 옳고 그름을 나누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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