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 김태리-오정세의 사냥감은 '태자귀' 아닌 인간의 탐욕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6.25 10: 13

[OSEN=김재동 객원기자] 속설에 의하면 태자귀는 악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귀신이다. 많은 괴담 속에 공통된 부분은 아이를 가두고 굶기고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죽여 만든다.
SBS 금토 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김재홍)에서 구산영(김태리 분)에게 씌인 귀신의 정체가 바로 그 태자귀다.
악귀에게 희생된 구강모(진선규 분)의 메모에 의하면 그 태자귀를 만든 무당은 1917년생 최만월(오연아 분), 시점은 1958년이고 장소는 장진리다.

형사 서문춘(김원해 분)에 의하면 이 악귀의 희생자는 제법 많은 듯 싶은데 드라마상 시점으로 볼 때 그 첫 희생자는 염해상(오정세 분)의 친모(박효주 분)다. 다음이 구강모고, 보이스피싱범(김성규 분)에 이어, 구산영의 조모 김석란(예수정 분)까지 죽는다.
이들의 죽음은 양 팔목에 억센 힘으로 강제한 손자국 피멍과 목을 매죽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악귀가 저지른 이 교살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듯 싶다. 하다못해 빌딩 옥상에서 돈을 뿌린 보이스피싱범조차 떠밀어 추락사시키지 않고 어렵게도 난간에 목을 매단 점이 특히 그렇다.
차이점도 있다. 구강모, 보이스피싱범, 김석란의 죽음엔 악귀가 실체를 드러냈다. 각각 늙은 구강모의 모습, 보이스피싱범을 잡아채는 구산영의 손길, 김석란을 향해 빙글거리는 구산영의 행색으로.
하다못해 보이스피싱범의 경우엔 카드, 가방, 자살한 옥상 난간에 무더기로 구산영의 지문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자살로 종결처리 되지 않고 수사가 진행됐다면 구강모의 현장에선 구강모의 지문만 나왔겠지만 김석란의 현장에선 다시 구산영의 지문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염해상의 친모 죽음에선 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귀신보는 염해상의 눈엔 머리를 풀어헤친 그림자만이 보였다. 매개체인 붉은 댕기를 손에 쥔 염해상의 친모 눈에는 자신의 모습을 한 악귀가 보였을 지는 모르겠다.
또한 악귀가 빙의한 본체를 떠나 독단 행동을 할 때는 거울 속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석란을 해치러 악귀가 떠났을 때 거울 속 구산영의 그림자는 사라졌었다. 따라서 보이스피싱범이 죽는 동안 책상에서 자고있던 구산영의 모습을 비춘 거울 속에서도 구산영의 그림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악귀가 단독 행동을 할 때면 본체도 시각을 공유하는 모양이다. 본체인 구산영이 김석란의 화원재를 찾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아울러 그렇게 본체를 떠난 그림자는 피해자의 눈에는 실체처럼 나타나 외력을 행사하는 모양이다.
2회까지 드러난 악귀에 대해선 대충 이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남는 의문도 있다. 칼에 찔려 죽은 악귀가 왜 교살에 집착하는지, 또 그림자만으로도 외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과연 어떤 경우에 실체를 드러내는지도 차차 설명되길 기대한다.
어쨌거나 작가가 이 태자귀를 메인 소재로 차용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굶주림 끝에 좁디 좁은 죽통 속에 들어가서라도 음식을 먹겠다는 강렬한 욕망은 현대인들의 부(富)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도 닮아 있는 듯 싶다.
또한 염해상은 어떤 인연의 귀신, 혹은 학창 시절의 자신이나 친구쯤으로 보이는 말벗 고교생과 자살에 관해 말하면서 ‘위핍인치사’(威逼人致死)를 인용했다.
중국 명나라 법전인 ‘대명률’(大明律)을 조선 초기에 해석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 따르면 위세로 핍박하거나 겁박해 죽음에 이르게 하면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 있으며 이 같은 죽음을 '위핍인치사'(威逼人致死)라고 했다.
즉 자살 중 일부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가해자가 존재하는 살인의 결과라는 선조들의 인식을 언급한 것이다.
OECD가 2018~2020년 통계를 바탕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42개국 중 자살률 순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드라마속 염해상은 악귀로 인한 위핍인치사를 언급한 것처럼 포장했지만, 정작 작가가 하고 싶던 말은 부(富)와 귀(貴)를 가치로 사람들을 핍박하는 세태야말로 악귀가 아니겠느냐는 주제의식을 밝히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구산영의 베프 백세미(양혜지 분)가 고급 아파트촌을 지켜보며 “저런 곳에서 살면 불행해도 행복하게 불행할 것 같다”고 한 대사는 시사적이다.
“아니요. 귀신은 없어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예요. 저 악귀같은 인간들 때문에 현욱이도 죽고 진우도 죽은 거예요. 귀신때문이 아녜요.”라는 구산영의 말은 틀렸다. 태자귀가 분명히 구산영에 들러붙어 있으니. 하지만 또 맞기도 하다. 그 태자귀조차 사람이, 그 저열한 탐욕이 만들어 냈으니. 귀신도 만들어내는 인간의 탐욕이란 얼마나 끔찍한가.
김태리, 오정세가 리드하는 김은희표 오컬트 드라마 ‘악귀’는 고작 2회 만에 시청률 10%(순간 최고 13.1%)를 돌파하며 충분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아직 풀어놓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은 느낌이다. 보는 맛 있는 배역들의 연기와 탄탄한 스토리, 짜임새 있는 연출이 ‘악귀’의 앞으로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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