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나는 압니다. 사람들의 웃음 중 대부분이 정말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우월하고 싶어서 웃기도 합니다. 이 경우 흔히 경멸이 담깁니다. 비웃음입니다. 사람들은 어이 없어서도 웃습니다. 실소입니다. 더러는 예의상 웃을 타임이라서 웃기도 합니다. 이런 웃음엔 아무런 영혼도 없습니다. 어쩔 땐 난감해서도 웃습니다. 썩소입니다. 그리고 난 그런 모든 웃음이 싫습니다. 그 웃음으로 위장하는 경멸과 적의, 혹은 공감할 줄 모르는 천박한 영혼이 역겹습니다.”
지난 18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JTBC 토일드라마 '킹더랜드'(극본 최롬(팀 하리마오), 연출 임현욱)의 남주 구원(이준호 분)은 웃음을 경멸한다.
이제는 얼굴마저 떠오르지 않는 엄마가 흔적없이 사라졌던 유년의 시절,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그를 웃음으로 맞았다. 최악의 시기를 보내던 구원 눈에 그 웃음들은 하나같이 비틀려있었다. ‘나는 이렇게 괴롭건만 그런 나를 향해 웃다니..’
그 이후 구원에게 미소는 인간들의 몰염치, 무자비, 비겁의 상징쯤으로 여겨졌다. 킹그룹의 후계자로 인식된 한국에선 모두가 그처럼 혐오스런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영국 유학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이었다. 하지만 후계자 교육을 시키겠다는 아버지 구일훈(손병호 분) 회장의 희망에 따라 귀국해 억지춘향격 인턴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구태의연한 상사 갑질에 저항하다 하루 만에 고맙게도 잘렸다. 하나 건진 것이 동기 노상식(안세하 분)이다.
노상식은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정도의 가치관을 가졌다. 정규직이 꿈인 주제에 복사기도 못다루는 동기 도와주다 욕받이를 자초한다. 가식 없는 그 모습이 구원에게 좋아보였다. 그렇게 친구이자 비서가 된 노상식은 구원에게 위안이다. 스스로 내켜 선택한 외톨이 생활이지만 어쨌든 고독은 고통이다. 맘에 없는 말은 죽어도 못하는 노상식 같은 친구 하나쯤은 구원에게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루만에 잘린 인턴 생활은 명분이 됐다. 여기에 구원을 경영에서 배제하고픈 배다른 누나 구화란(김선영 분)의 측면 지원에 힘입어 구원은 노상식과 함께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7년. 어느 날 발신자 불명의 우편물이 도착한다. 내용물은 오래전 킹호텔에서 근무했던 엄마의 인사기록카드다. 자신의 유년기를 망가뜨린 엄마의 실종. 애써 지우려던 그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 단서를 잡고자 구원은 자발적 귀국을 선택하고 킹호텔 본부장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취임 환영식에서 만난 여자 천사랑(임윤아 분). 7년간 단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두 번 모두 잊히지 않을 만큼 불쾌한 기억을 안겼던 여자가 직원 홍보모델의 타이틀을 앞세워 꽃다발을 건넨다. 세상 가장 가식적인 미소를 얄팍하게 얼굴에 띄운 채.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했던 호텔에서의 한 때는 길지 않은 인생을 관통해 가장 행복한 기억입니다. 그래서 호텔리어를 꿈꿨습니다. 호텔을 통해 내가 느꼈던 행복을 남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킹호텔의 실습생 시절, 미소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미소는 효율적이고 힘이 셉니다. 친밀감을 높이고, 존중받는 느낌을 선사하며, 분노조차 가라앉힙니다. 무엇보다 쥔 것 별로 없는 처지에선 훌륭한 생존방식이 됩니다. 2년제 대학 출신 실습생이 7년차 호텔리어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물론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부럽긴 합니다.”
우수사원-친절사원-킹호텔 홍보모델. 호텔리어 천사랑의 승승장구에는 이쁘게 그려내는 미소가 한 몫했다. 그런데 웃지 말라는 인간이 등장했다. 본부장 타이틀의 구원이다. 킹그룹 2세이기도 하다.
천사랑으로선 그런 구원이 어이없다. 저야 돈 있고 빽 있는 데다 지 눈치 보는 인간들은 득시글한데 지가 눈치 볼 사람은 없으니 안웃어도 되겠지. 근데 돈 없고 빽 없고 눈치볼 사람만 득시글한 인생조차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은가.
물론 천사랑 쪽에서 약간의 실수는 있었다. 스위트룸 화장실을 허락없이 이용하다 걸리긴 했다. 하지만 사람이 정 급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그것도 휴대폰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려다 그런 건데... 그런데 따지다보니 7년 전에도 실수했단다. 호텔 피트니스센터 러닝머신에서 동댕이를 치고 변태라고 모욕했다나?
천사랑도 기억은 난다. 분명 그런 적은 있었다. 다만 그 해프닝 외에 기억나는 건 셔츠 등에 새겨진 호랑이뿐이다. 그럼에도 구원이라는 이 쪼잔한 인간은 기어코 천사랑의 얼굴을 기억해내고는 목소리를 키운다. ‘아무리 변태라도 이 정도로 뻔뻔할 수는 없는데.. 그 변태가 이 변태가 아닌가?’ 싶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지깟게 본부장이면 본부장이지 남의 치명적 무기인 미소를 무장해제 하라니. 천사랑은 어깃장이 치밀어 오른다.
제작진은 ‘진짜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작의를 밝혔다.
‘킹더랜드’는 작정하고 만든 로맨틱 코미디답게 클리셰에 충실하다. ‘티격태격하다 사랑하기.’ 스토리라인도 그려진다. 구원은 구원받고 사랑은 사랑을 찾고. 그래서 모두 기탄없이 웃는 피날레까지. 다만 주인공이 로맨스에 정평있는 이준호-임윤아라 기대된다.
이제는 노래 잘하는 아이돌보다 연기 잘하는 배우의 이미지가 더 강한 두 사람의 호흡은 방영 2회 만에 합격점을 받았다. 첫회 5.1%의 시청률이 2회 7.5%로 껑충 뛰었다.
아무래도 이번 장마철엔 이준호-임윤아의 ‘킹더랜드’ 바람이 심상찮아 보인다. 원래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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