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선가 앉아서 보고 있을 제 와이프. 박보경, 제 와이프. 배우인데 애 둘 키우느라고 진짜 고생 많다. 진짜 너무 고생 많았어, 여보. 사랑해”
배우 진선규의 수상 소감으로 ‘박보경’이라는 배우가 알려졌다. 진선규와 함께 극단 생활을 오래 했지만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약 10년의 경력단절을 겪어야만 했던 박보경. ‘아내’ 박보경, ‘며느리’ 박보경, ‘엄마’ 박보경이 아닌 ‘배우’ 박보경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이다.
2010년 진선규와 결혼, 두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느라 약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가 아닌 ‘아내’, ‘엄마’로 살았다. 그 사이 남편은 ‘범죄도시’, ‘극한직업’, ‘사바하’, ‘암전’ 등의 영화와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미스터 션샤인’, ‘킹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명실상부 대세 배우가 됐다. 진선규의 성공에는 박보경의 내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배우 박보경’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쉬움이었다.
그럼에도 박보경은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는 티를 내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보경은 “10년 동안 슬퍼한다거나, 하고 싶어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남편이 내게 늘 미안해 하는 걸 안다. 아이를 낳자고 한 건 우리 결정이고, 아이들을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며 “현장에 나가는 걸 꿈꿨지만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하고, 육아에 대한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다시 배우로 나가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가게 된다면 아이들이 다 크고 연극 무대에 할머니 역할 정도이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최근 종영한 ‘닥터 차정숙’의 현실과도 같았다. 가족에게 집중하느라 ‘배우’로서의 모습이 멀어지던 그때, 박보경은 남편의 수상 소감으로 ‘끌올’ 됐고, 2019년부터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 ‘킹덤’ 시즌2, ‘슬기로운 의사생활’, ‘괴물’,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소년심판’, ‘링크:먹고 사랑하라, 죽이게’, ‘작은 아씨들’, ‘나쁜 엄마’까지 만나게 됐다.
‘작은 아씨들’ 고수임에 이어 ‘나쁜 엄마’ 이장 부인 역까지, 박보경의 존재감이 빛났다. 박보경은 요즘에 대해 “꿈 같고 거짓말 같다. 연극 공연을 할 적에도 매체 연기를 하는 건 극소수의 선배님들이었다. 이제야 영역이 더 넓어진 것 같다”며 “나는 경력 단절이 10년이나 되는데, 매체 오디션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의 상황이 너무 꿈 같다. 연극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나쁜 엄마’를 연출한 심나연 감독과 ‘괴물’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박보경은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이장 부인 역으로 작품에 함께 하게 됐다. 박보경은 “너무 좋았다. 외국 작품들 보면 이런 캐릭터들이 많다.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를 끝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고 캐스팅 당시를 떠올렸다.
박보경이 열연한 이장 부인은 마스크 팩 너머로 촌철살인을 날리며 마을 사람들을 기겁하게 만든다. 반려견 ‘호랑이’ 엄마, 야쿠자의 딸이라는 루머와 스커트 밑으로 숨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문신을 지닌 묘령의 여인으로 궁금증을 자극했다. K-콘텐츠 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5월 4주 차 드라마 출연자 검색 이슈 키워드 순위에서 6위에 오르는 등 높은 관심도를 증명했다.
박보경은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버전도 있고, 오픈되는 버전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끝까지 공개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들 궁금해하시면서 오픈한 버전으로 하게 됐다. 극 중간에 공개하는 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팩 뒤에서는 자유로웠다. 이장 부인이 얼굴은 숨기고 있지만 할 말은 숨기지 않는다. 팩 뒤에서 인간 관계를 다 지켜보고 관찰하고 있었다. 팩이 일단 나를 가려주니까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자유로웠는데, 눈과 입에 집중을 했다. 눈은 더 또렷하게 분장을 하고, 목소리는 명확하게 꽂혔으면 했다. 대사가 많지 않았기에 한 마디가 중요했고, 꽂히게 하고 싶어서 목소리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박보경이 만들어낸 ‘이장 부인’은 궁금증을 자극했고, 결국에는 정체가 공개되며 궁금증을 해소했다. 미스터리한 이장 부인을 만들어낸 박보경의 열연 속에 ‘나쁜 엄마’는 최고 시청률 12%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박보경은 “체감사한 일이라고 느꼈다. 드라마도 따뜻한데, 시청률도 잘 나오니까 단톡방도 훈훈했다. 단톡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부터 해서 너무 신기한 게 많았다”고 말했다.
아내의 연기 활동에 남편이 힘을 실었다. 진선규가 보낸 커피차가 박보경을 비롯해 배우들에게 힘을 준 것. 박보경은 “원래 스케줄이 괜찮으면 남편이 마지막 화에 나를 데리러 오는 야쿠자 역으로 나오는 걸 작가님과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게 안되면서 커피차를 보내줬다. 보내준 날이 법정 장면을 찍는 날이었는데 회사가 보내주는 것 말고 남편이 보내준 게 처음이다. 보내준 커피차를 보니까 눈물이 났다. 고마움도 고마움인데 내가 진짜 현장에 있다는 걸 느꼈다. 감회가 새로워서 울었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힘을 얻고, 즐거움을 느낀 박보경. 그는 “(경력단절을 이겨내고) 일이 들어오고 현장에 가게 됐는데, 그 현장이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니라 기다려지는 현장이었다. 그런 작품을 만났고, 현장에서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걸 남편이 보면서 ‘되게 좋아보인다’, ‘(현장과 연기를) 좋아하고 있네’라고 해주더라”고 말했다.
‘나쁜 엄마’까지 훌륭하게 마친 박보경은 차기작 촬영, 준비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박보경은 “지금 찍고 있는 것과 몸을 준비하고 있는 게 맞물려 있다. 지금처럼은 운처럼 와서 내가 한거라면, 이제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기 위해서 준비를 미리 할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작은 아씨들’, ‘나쁜 엄마’는 준비 없이 만났다. 이번에는 시간이 있으니, 먼저 준비를 해서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