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올 시즌 선발투수들의 이닝 소화력이 가장 떨어지는 팀이다. 경기당 평균 4⅔이닝으로 유일하게 5이닝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개막전부터 버치 스미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5월 중순까지 외국인 투수 1명으로 마운드를 운영했다. 대체 선수 리카르도 산체스가 합류한 뒤에는 김민우가 타구에 팔을 맞아 로테이션을 한 번 건너뛰더니 어깨 부상으로 3개월 재활 진단을 받았다. 문동주가 관리 차원에서 한 번 빠졌고, 장민재도 휴식과 조정이 필요함에 따라 현재 퓨처스 팀에 있다.
시즌 내내 5인 선발 체제가 정상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태양(33)마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경기 상황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투입되는 이태양은 대체 선발 2경기에 구원으로 2이닝 이상 던진 것도 6경기나 된다. 필승조부터 롱릴리프, 대체 선발까지 팀이 필요로 하면 그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던지고 있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태양 같은 투수가 있으면 감독 입장에서 운영하기가 좋다”고 고마워했다. 그만큼 시즌 성적도 우수하다. 24경기에서 2홀드 평균자책점 2.50을 기록 중이다. 36이닝 동안 삼진 27개를 잡으며 볼넷은 8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벤치에서 어떤 상황에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투수다.
개막전부터 스미스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긴급 투입된 이태양은 “그런 순간마다 팀이 저를 찾아주고 필요로 하는 게 느껴진다. 힘든 것보다 책임감이 크다. 한화에 돌아올 때부터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팔이 빨리 잘 풀리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올라갈 순 없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는 공을 던지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화와 4년 25억원에 계약하며 친정팀에 돌아온 이태양은 FA 모범생으로 거듭났다. “이태양 다시 잘 데려왔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 좋다”는 이태양은 “시즌 초반에는 FA로 돌아왔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보다 마운드에서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FA 모범생이란 말을 들으면 뿌듯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매 경기 소중히 준비한다”고 이야기했다.
지난해에도 선발과 구원을 넘나들며 SSG 통합 우승에 기여한 이태양은 20대 젊을 때처럼 구위로만 승부하진 않는다. 올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은 139.2km로 빠르지 않다. 하지만 9이닝당 볼넷이 2.0개에 불과하고, 피홈런이 1개로 장타 억제 능력이 좋아졌다.
이태양은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다. 저도 프로 이제 14년차인데 여러 경험을 하면서 마운드에서 여유가 생겼다. 네모난 스트라이크존 위아래, 양 사이드를 구석구석 활용하고 있다. 공 하나를 던져도 그냥 던지는 게 아니라 다음 공도 생각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간다”며 “탈삼진도 투수가 잡는 게 아니라 타자가 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카운트에 맞는 투구를 하려고 노력한다. 투수가 던지다 보면 안 맞을 순 없는데 실투가 적게 나오니 장타 허용도 줄어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화는 팀 순위가 10위로 처져있지만 평균자책점은 6위(4.20)로 리그 평균 근처에 있다. 한화 투수조장인 이태양은 “우리 투수진이 강하면 강했지 다른 9개팀 팀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꾸준함이 필요하다. 오늘 하루, 일주일, 한 달 잘했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다. 144경기 시즌은 길다. 어린 친구들은 앞으로 야구를 10년 이상 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스스로 내실을 잘 다져놓아야 나중에 슬럼프 왔을 때도 잘 극복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저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가진 친구라 루틴이나 멘탈 부분 위주로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태양은 “아직 시즌이 80경기 넘게 남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시즌이 끝날 때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결과를 보여드리기 위해선 지금 과정이 중요하다. 매 경기 하루하루 소중히 여기며 준비해야 한다. 모든 선수들이 시즌 끝나고 스스로 납득이 될 수 있는 시즌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