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하하하 그려. 아줌마가 그 돈 해줄게. 그 돈 줄테니께 그 서하라는 애, 잘 만나고 와.”
흐뭇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차청화의 모습은 전혀 극중 배역 ‘김애경’으로 웃는 것 같지가 않다. 그저 자연인 차청화가 깜찍한 꼬맹이의 연기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웃는 모습 그대로 비쳐진다.
17일 방영을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최영림 한아름 극본, 이나정 연출)가 첫 회부터 11살 배우 박소이의 절로 웃음을 부르는 연기력으로 시선을 잡았다.
박소이는 신혜선이 맡은 여주인공 ‘반지음’의 아역으로 등장했다. 반지음은 천년의 세월동안 18번의 환생 기억을 지닌 채 19회차를 살고 있는 캐릭터다.
‘윤주원’(김시아 분)이란 이름으로 살았던 18회차 인생을 떠올리면서부터 “곁에 있어줄게”라 약속했던 ‘문서하’(안보현 분)란 꼬맹이가 마냥 궁금하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함께 당해 전생인 윤주원은 요절했는데 과연 서하는 살았을 지, 살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지가 어린 반지음의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19회차는 쉽지 않은 인생이다. 알콜 중독·도박 중독인 아빠에, 도망간 엄마에, 양아치 오빠까지.. 전생의 기억들을 무기로 ‘만능소녀’ 타이틀을 걸고 플라맹고도 추고, 스페인어도 하고, 한자 음독·훈독도 해가면서 돈을 벌어보지만 밑빠진 독 신세다.
당돌한 꼬맹이 반지음은 할 수 없이 17회차때 조카로 인연 맺은 애경을 찾아간다. 이 부분은 아직 드라마상 설명되진 않았지만 유복했던 18회차 윤주원 시절 애경의 거주지를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애경은 동백연예단 시절의 사진을 가게에 걸어두고 있다. 사진 설명을 해가며 자신의 전생이 애경의 삼촌 김중호임을 어필하지만 쉽사리 믿길 이야기가 아님은 본인도 안다.
그래서 그냥 착했던 조카의 심성을 믿고 질러본다. “그려 니 입장에선 쉽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긴 하지. 그러니께 그 부분은 차차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불쌍한 어린애 돕는다치고.. 그.. 10만 원만 땡겨봐.” 돈의 쓰임새를 묻는 애경에게는 이번 생에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서하의 존재를 밝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 1분 20초 가량의 긴 대사. “살아는 있는지, 잘 살아 있는 지 한번 찾아가고 싶은디.. 아 형편없는 집구석에 태어나는 바람에 찾아갈 차비조차 없더라고... 번듯한 행색으로 찾아가고 싶어서 돈을 좀 모아볼라 했는데 버는 족족 웬수같은 피붙이들헌티 전부 털려버려 가지고 안돼겄다 싶어갖고 일로 온거여... 애경이 니는 심성이 착한께 나를 받아줄까 싶어갖고... 아잇, 니도 텔레비전 봐서 알겄지만 내 재주가 오만가지다이. 당분간만 참고 지내주믄 그만 내 밥값 해불라니까 그런 줄 알고... 가만봉께 이 가게는 글러먹었어. 쓰잘데기 없이 잡다허게 하지 말고 요 묵은지로 오모가리 김치찜 해불믄 어쩔까 싶다.”
몇 번의 NG가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배우 박소이는 맞장구 없이 혼자 치는 이 긴 호흡의 대사를 앙증맞은 얼굴로, 애늙은이 같은 표정과 발성톤을 곁들여 소화해냈다. 그래서 돈통에서 돈을 꺼내 건네는 차청화의 터진 웃음은 아무래도 김애경이 아닌 차청화 본인의 웃음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돈 받아들고 애처럼 뛰어나가던 박소이는 멈칫 돌아선다. 그리고는 “애경아, 너 혼자 크느라 애썼다. 인자 삼촌이랑 같이 살자.”는 대사를 날린다. 친조카를 바라보는 듯 짠한 표정을 어린 얼굴에 한가득 담아.
박소이는 신혜선이 맡은 성인 반지음의 캐릭터 구축에도 크게 기여했다. 반지음의 삶은 18회차 윤주원이 결정했다. 세상살이 17번이나 거치며 시니컬해진 윤주원은 문서하를 만나 인생을 대하는 심드렁한 태도를 바꾼다. 모든 것이 아찔하게 재밌고 흥미로운 12살의 감흥은 윤주원을 감동시켰고 서하와는 인연을 계속 잇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그래서 19회차 삶은 온전히 문서하를 만나기 위해서 올인한다. 뭐든 꽂히면 직진하는 성격이 제각각의 이름으로 천년을 살아오도록 변치않았던 19회차 한정 ‘반지음’이란 이름의 정체성였던 것이다.
박소이가 연기한 어린 반지음은 그 목표를 위해 가출하고, 애경에게 어거지를 쓰고, 고등학생 서하의 집에 잠입하고, 학교도 포기한 채 서하의 뒤를 밟는다. 특별한 집요함 없이 숨쉬듯 자연스럽고, 이상하지만 아이같은 친밀감을 박소이는 문서하에게 전해줬다.
그 덕에 바통을 이어받은 신혜선이 서하가 사라진(독일 유학중) 이후 서하네 집안 MI그룹 입사를 위해 올인하는 모습에 개연성이 담겼다. 검정고시로 카이스트 조기 입학, 조기졸업. 직후 MI모비티 선임연구원이 되어 서하를 기다리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연장선이다. 귀국한 서하가 호텔행을 결정하자 미련없이 호텔로 적을 옮겨 걸핏하면 “사귀자‘ ”결혼하자“등의 멘트로 서하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문서하. 귀국하자마자 느닷없이 자신의 인생에 끼어든 반지음이란 여자로 인해 곤혹스러워하던 서하는 마침내 그 반지음이 방황하던 학창시절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결혼하자고 제의했던 꼬맹이임을 알게 된다.
이제 막 시작된 로맨틱 판타지 ‘이번 생도 잘 부탁해’. 얼마나 더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배우 박소이로 반지음의 어린 시절을 연 것은 참 잘한 선택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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