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역시 잠실 더비다. 불금의 화끈함이 폭발한다. 백미는 7회였다. 4-5로 밀리던 베어스의 반격이다. 박계범이 2루타로 불을 지핀다. 이어진 2사 1, 3루. 양석환 타석이다. (16일 잠실, LG-두산전)
2구째. 포수 박동원이 몸쪽으로 붙어 앉는다. 유영찬의 빠른 볼(147㎞)이 낮게 꽂힌다. 아차. 조금 빠졌다. 양석환이 왼쪽 발목을 잡고 쓰러진다. 그리고는 마운드를 향해 레이저를 쏜다. 투수가 모자를 벗고 미안함을 표시한다.
구심과 포수가 재빨리 중간을 막아선다. 박동원의 설명이다. “싸우지 않았다. (유)영찬이가 아직 젊은 선수이고, 이런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칫 멘탈이 흔들릴까봐 보호하려던 것이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려고 일부러 시야를 가렸다.”
중재하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러자 돌발 상황이 전개된다. 양쪽 선수들이 모여들었다. 벤치 클리어링이다. 물론 더 이상 큰일은 없었다. 1~2분간의 대치극이 전부였다. 주연 양석환, 조연 박동원의 쇼츠에 불과하다.
하지만 씬 스틸러는 따로 있다. 잠실 오 씨, 오스틴 제임스 딘이다. 번쩍이는 기동력과 전우애로 주목받았다. 그를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물론 본인의 진술과는 전혀 무관하다. 전지적 빙의 시점이다.
악, 비명이 들린다. 홈 플레이트가 일촉즉발이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금세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타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는다. 우리 포수에게 뭐라고 불만을 쏟아낸다. 저쪽 벤치의 눈길도 심상치 않다.
안 되겠다. 저러다가 사달 나겠다. 본능적으로 덕아웃을 박차고 나간다. 바로 뒤에 허도환이 따라온다. 몇 초 만에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저쪽 팀도 우르르 몰려온다. 얼핏 돌아보니 우리 편 몇몇은 아직도 벤치에서 뭉그적거린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나와.’ 바쁜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다. 상대와 거리를 좁히려는 찰나다. 누군가 팔을 붙잡는다. 몸통도 감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애덤(플럿코)이다. 그러지 말라고 “돈 두 댓, 돈 두 댓(Don't do that)”을 외친다. 뿌리쳐 본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하지만 슬라이더 투수의 악력을 어찌 이기겠나.
조금 뒤로 끌려 나왔다. 그러자 전혀 다른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심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환한 표정이다. 심지어 웃는 얼굴도 있다. 박경완 코치, 김현수, 허도환…. 무슨 즐거운 일 있나? 끼리끼리 포옹도 나눈다. 기막힌 브로맨스다.
흥분한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이런 된장, 이건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주먹이 오가고, 그래플링이 난무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들 화기애애하다. 무슨 스탠딩 파티 같은 분위기다. 애덤(플럿코)이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괜히 오버했다. 머쓱하고, 뻘쭘하다.
2021년의 일이다. 개막 직후(현지시각 4월 3일) 사건이 생겼다. 세인트루이스의 신시내티 원정 때였다. 홈 팀 레즈의 닉 카스테야노스가 옆구리를 맞았다. 작정하고 일부러 맞힌 빈볼이었다.
이틀 전 일 때문이다. 개막전에서 눈 밖에 났다. 홈런을 치고 타석에서 깡총깡총 뛰었다. 배트까지 멀찍이 던져버렸다. 감히 카디널스 앞에서? 파이팅으로 똘똘 뭉친 팀 아닌가. 이런 꼴은 절대 못 넘어간다.
4회 그의 타석에서 응징이 들어간다. 안쪽 깊숙이 저격이 감행된다. 엄청난 통증이겠지만, 당사자는 어금니를 꽉 깨문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공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투수(제이크 우드포드)를 향해 까딱까딱 흔든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3루까지 나간 뒤 일이 터졌다. 폭투 때 홈으로 쇄도하며, 베이스 커버 들어온 투수와 충돌이 생겼다. 그러면서 쓰러진 투수를 향해 뭔가를 소리친다. 빈볼에 대한 뒤끝이었다.
그러자 저승사자가 달려온다. 좀비들의 전사 야디에르 몰리나다. 그가 카스티야노를 죽일 듯이 밀어붙였다. 동시에 카디널스 전원이 몰려나온다. 레즈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역시 모두 달려 나온다. 그라운드는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외야에서 2차전까지 벌어졌다. 엄중한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멈추지 않은 화끈한 벤클이었다. (9-6 신시내티 승리, 카스티야노는 퇴장 조치)
이 사건에 유독 동분서주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백넘버 0번의 빨간 좀비다. 바로 이적 초창기의 오스틴 딘이다. 스토브리그 때 마이애미에서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 이적했다. 개막 엔트리에 합류해 이날은 벤치 대기였다.
하지만 사건 때 가장 많은 활동량을 보였다. 특히 피해자인 투수 우드포드를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그 공로를 인정받은 탓인지, 5회 대타로 나가 우익수로 기용됐다(2타수 무안타). 이적 후 첫 출전이었다.
어제(16일) 가장 먼저 덕아웃을 박차고 나간 것, 접근전의 최전방에서 활약한 것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좀비 카디널스의 전사로 2년간 갈고 닦은 DNA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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