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이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뇨, 아뇨”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한화의 복덩이로 떠오른 멀티 신인 문현빈(19)에겐 신인왕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문현빈은 지난 14~15일 사직 롯데전에서 연이틀 홈런을 터뜨리며 펀치력을 과시했다. 데뷔 첫 홈런이 터지자마자 다음날 또 홈런이 나왔다. 174cm, 82kg로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갖춘 문현빈은 천안 북일고 시절에도 3년간 홈런 5개를 기록했다. 지난해 신세계 이마트배 홈런왕(2개)을 차지하기도 했다.
문현빈은 “제가 장타 툴이 있다기보다는 남들보다 강한 타구 스피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인드라이브를 치려고 한 공이 운 좋게 멀리 간 것 같다”며 “첫 홈런은 상대 투수(댄 스트레일리)의 직구를 노리고 있었다. (나균안에게 만든) 두 번째 홈런은 포크볼이 몰려 (포인트) 앞에서 잘 맞았다”고 떠올렸다.
올해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문현빈은 팀 내 신인 야수 중 유일하게 1군 스프링캠프에 포함됐다. 일찌감치 가능성을 보여주며 개막 엔트리에 들었고, 시즌 3개월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1군에 생존 중이다. 고교 시절 주 포지션은 2루수였지만 지금은 중견수 위주로 꾸준히 선발출장 기회를 얻고 있다.
지난 16일까지 문현빈은 56경기 타율 2할5푼(164타수 41안타) 2홈런 20타점 OPS .636을 기록 중이다. 눈에 확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4월 21경기 타율 2할1푼8리 5타점 OPS .591로 시작했지만 5월 21경기 타율 2할6푼3리 9타점 OPS .633, 6월 14경기 타율 2할6푼9리 2홈런 6타점 OPS .763으로 향상됐다.
좋은 계기가 있었다. 지난달 23일 대전 KIA전에서 1회 1사 만루에서 삼진을 당한 뒤 선배 채은성으로부터 “득점권 찬스에선 굳이 공을 고르지 않아도 된다. 주자를 모으는 상황이 아니면 공격적으로 해도 된다. 안타 못 쳐도 그라운드에 타구만 굴려도 점수가 난다. 그게 쌓이면 네 기록이고, 팀에도 플러스가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경기부터 문현빈은 21경기 타율 3할9리(81타수 25안타) 2홈런 12타점 OPS .777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득점권 타율도 3할3푼3리(12타수 4안타).
문현빈은 “채은성 선배님이 찬스가 되면 적극적으로 배트를 내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렇게 하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주자가 있든 없든 노리는 공이 오면 적극적으로 스윙하고 있다”며 “타순에 대한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최원호 감독님이 ‘결과보다 과정을 위해 네 스윙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6~7번 타순에서 부담 아닌 부담을 덜어낸 것 같다”고 말했다.
5월말부터 1~2번 테이블세터를 맡다 지난 9일 대전 LG전을 시작으로 최근 6경기에선 6~8번 타순으로 내려갔다. 이후 홈런 2개, 2루타 3개로 장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최원호 감독도 “1번 타순에선 출루에 신경써서 볼을 보느라 자기 스윙을 못하더라. 타순을 내리자 장타도 곧잘 친다. 자기 스타일대로 치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타격만큼 수비 욕심도 많다. 중견수로 36경기(31선발) 251이닝, 유격수로 9경기(5선발) 48이닝, 2루수로 9경기(3선발) 44이닝을 뛴 문현빈은 사실상 주전 중견수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경기 전 수비 훈련 때 외야는 물론 내야도 같이 한다. 훈련도 두 배로 하고 있는 그는 “지금 외야에서 기회를 받아 뛰고 있지만 내야 욕심이 있다. 내야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신인왕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 없다. 워낙 잘하는 형들과 친구들이 많다. 제가 해야 할 것에만 신경쓴다. 다치지 않고 1군에 끝까지 있다 보면 성적도 따라올 것이다”며 “제가 지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고 싶다. 예를 들어 홈런을 쳤다고 또 홈런을 보여드리겠다는 말은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전력 질주는 제가 지킬 수 있는 플레이다. 그래서 매번 전력 질주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은퇴하는 날까지 1루로 전력 질주한 ‘양신’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은 문현빈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항상 전력 질주를 빼놓지 않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진심을 담은 다짐을 매일매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문현빈에겐 신인왕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