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기(50) 키움 감독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외국인 선수들과 가족들을 따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가졌다. 야구장이 아닌 식사 자리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키움에서 5년차를 맞이한 ‘장수’ 외국인 투수 에릭 요키시(34)에게도 감독과 저녁 식사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캠프 당시 만난 요키시는 “감독님이 외국인 선수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줘 특별했다. 한국을 떠났다 돌아온 에디슨 러셀이나 새로 온 아리엘 후라도에겐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뜻깊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요키시는 홍원기 감독에게 “작년에 못한 우승을 하자”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키움은 지난해 정규리그 3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위로 직행한 SSG에 2승4패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요키시는 “지난해 준우승이 우리 팀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우승을 하려면 정규시즌 1위를 해야 한다. 올해 우리 팀 방향이 확실하다.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이정후의 마지막 시즌이고,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적기다. 내가 그 시기를 함께할 수 있게 돼 행운이다”며 남다른 우승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요키시의 우승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6일 고척 LG전에서 왼쪽 허벅지 통증을 느꼈고, 검진 결과 내전근 부분파열 진단이 나왔다. 최소 6주 재활이 필요한 부상. 아직 7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우승에 도전하는 키움이 기다리기에 긴 시간이었다. 회복이 되더라도 예전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키움으로선 상위권 진출을 위해 승부를 걸어야 했고, 아쉽지만 요키시와 작별을 결정했다.
비즈니스 차원의 결정이지만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재활군이 있는 고양을 찾아 요키시를 만났고, 팀의 사정을 직접 설명하며 예우를 갖췄다. 누구보다 키움의 우승을 바란 요키시였기에 결정을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키움 구단도 요키시 가족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신변정리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선수들은 물론 팬들과도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자리를 마련했다. 오는 24일 고척 삼성전을 앞두고 요키시를 위한 팬 사인회도 연다.
홍원기 감독은 요키시와 작별에 대해 “많이 아쉽다. 5년간 우리 팀에서 많은 경기, 많은 승리를 거뒀지만 팀원들과 정말 가깝게 지냈다. 외국인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경기 내용보다 선수들과 팀워크, 희생 정신이 기억에 남는 선수”라며 “캠프 때 식사 자리에서도 요키시가 작년에 못한 우승을 하자는 다짐도 했다. 그 꿈을 같이 이루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키움과 동행이 끝났지만 인생사 모르는 일이다. 지난해 5월 팔꿈치 부상으로 KT를 떠났던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1년 만에 친정으로 컴백한 것처럼 요키시도 부상이 회복되고, 향후 키움의 팀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재결합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홍 감독은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른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아무도 장담을 못한다”며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