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나흘 전이다. 지난 9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 눈길이 모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다. 2명이 등장하며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류중일 감독과 조계현 전력 강화 위원장이다.
착석 전에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이어진 조 위원장의 모두 발언이다. “먼저 22년 항저우 대표팀 구성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들과 언론인, 방송인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뭐, 새삼스러울 건 없다. 흔한 기자회견장 풍경이고, 멘트다. 그런데 이날은 아니다. 왠지 다른 느낌이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충분히 예를 갖추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어쩌면 기억 탓인지 모른다. 5년 전인가? 지난 대회의 격렬했던 후폭풍 말이다.
호되게 앓았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고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가. 24명을 추리는 일,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따져야 할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나이, 와일드카드, 포지션, 컨디션, 기타 등등. 게다가 팀별 안배도 해야 한다.
당장의 베스트 멤버 구성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데 미래까지 생각해야 한다. 세대교체라는 과제다. 물론 성과(금메달)는 당연하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쿄 참사가 얼마나 지났다고. 여론은 날카롭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도 대표팀 일을 맡았다. 수고하는 야구인들, 특히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받아 든 류 감독.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됐다. 태극마크로 감당해야 할 게 점점 커진다. 이젠 그들의 뜻을 헌신이라고 이해한다.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반론이 있다.
이번 대표팀 구성에는 몇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그중 포지션에 대한 것도 있다. 포수, 외야수, 불펜 투수에 대한 얘기들이다. ▶ 안방을 지킬 경험치가 적고 ▶ 외야 전문은 3명뿐이며 ▶ 투수진이 대부분 선발 자원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이날 대부분 이뤄졌다. ▶ 포수는 검증된 김형준(NC)을 활용할 것이고 ▶ 외야까지 겸업할 내야수들이 있으며 ▶ 1+1 전략으로 운영하면 선발, 불펜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오늘 제기할 반론은 이 중 불펜에 대한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왜 박명근이 아니고, 정우영인가’ 하는 것이다. 기자회견 때도 여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정우영의 구위가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평가’라는 질문이다.
류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정우영과 박명근(LG) 중에서 한 명을 선택했다. 전력 강화 위원들과 함께 고민했는데, 국제대회에서는 시속 150㎞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지는 정우영이 활용도가 크다고 생각했다.”
이 답변은 이런 비판을 만났다. ‘류 감독은 정우영이 좋을 때 기억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이 키운 제자라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아닌가.’ 같은 얘기들이다. 하지만 귀담아들을 주장은 아니다. “이번 선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공정과 투명”이라고 조 위원장이 강조했다. 적어도 반론은 기본적인 신뢰에서 출발한다.
현재 성적은 분명히 차이가 난다. 격차가 큰 부분은 ERA(평균자책점)와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이다. 박명근의 WAR은 트윈스 투수 중 4번째로 높다. 반면, 정우영은 28번째로 최하위다.
박명근 = 27게임, 25.2이닝, ERA 2.45, WHIP 1.29, WAR 0.66
정우영 = 30게임, 26.0이닝, ERA 4.85, WHIP 1.27, WAR -0.94
물론 커리어 누적 기록도 중요하다. 정우영은 분명 KBO리그 최고의 불펜이다. 메이저리그에 가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일시적인 부진일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다. 류 감독의 말처럼 국제대회에서는 강력함이 필요하다.
반면 박명근은 아직 루키다. 좋은 자질을 갖춘 것은 맞다. 뛰어난 구위를 가졌다. 적극적인 승부를 즐긴다는 장점도 갖췄다. 하지만 리그를 뛴 지 2개월 남짓이다. 신뢰감을 갖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다.
대회가 3개월 남았다는 변수도 작용한다. 부상 중인 선수도 선발한 이유다. 그 때까지는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 덕분이다. 정우영의 경우도 비슷하다. 차츰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박명근은 우려가 있다. 처음 치르는 페넌트레이스다. 여름을 지나며 페이스가 떨어질지 모른다. 이런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불확실한 경험적 예측이다. 여기서 비롯된 편견일 뿐이다. 스피드의 중요성, 누적 성과, 표본의 많고 적음. 이런 것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그보다 우선할 게 있다. 현재, 즉 선발 당시의 전력이다. 지금 얼마나 위력적인 공을 던지느냐, 얼마나 타자와 좋은 승부를 하느냐다. 데이터가 객관성을 나타내고, 현장에서의 결과가 이를 검증한다. 이게 가장 타당한 기준이다. 그걸 앞서는 경험이나 예상은 위험하다.
확인된 표본의 크기가 작다? 그건 나균안과 최지민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은 해당되지 않았다. 박명근에게만 적용하는 건 일률적이지 않다. 3개월 후는 아무도 모른다. 그걸 전제하면 기준은 모호해진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보직의 문제다. 이번 대표팀에는 불펜 요원이 적다. 특히 마무리 후보는 고우석뿐이다. 그도 정상 컨디션은 아니다.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차하면 대역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명단에 불펜 전문은 정우영과 최지민, 박영현 정도다. 이 중에서 캐스팅해야 한다.
관련한 얘기다. 염경엽 감독의 속내가 몇몇 매체에 보도됐다. 대표팀 발표를 앞둔 시점이다. 이런 내용이다. “박명근이 많이 올라와서 (선발될) 가능성이 있다. 설마 고우석-정우영-박명근을 모두 뽑아가지는 않겠지. 아마 (불펜으로는) 두 명 정도일 것 같다.” 역시 기술위원장 출신이다. 정확히 읽고 있다.
이어지는 말이다. “정우영-박명근이 나간다면 고우석이 남을 테니 (LG에는) 나쁘지 않은 옵션이다. 그런데 만약 박명근-고우석이라면 예상을 벗어난다(한 매체는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 된다’라고 인용했다). 정우영은 세이브 상황 등판이 어려워도, 박명근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지민과 박영현은 올 시즌 1세이브씩을 기록했다. 박명근은 5세이브다. 정우영은 5년간 통산 8세이브를 올렸다. 2021년 8월 28일 키움전이 마지막이다. 고우석의 3연투를 막기 위해 9회를 2K 무실점으로 막았다. 2022시즌 이후에는 세이브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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