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개막전 선발이었던 외국인 투수 버치 스미스가 2⅔이닝 60구 만에 어깨 통증으로 방출돼 보장 연봉 80만 달러를 날렸다. 시즌 시작부터 큰 낭패를 봤지만 스미스의 반값인 40만 달러에 급히 영입한 리카르도 산체스(26)가 대박을 치면서 전화위복이 되고 있다.
지난달 11일 KBO리그에 데뷔한 산체스는 6경기에서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39로 빠르게 연착륙했다. 32⅓이닝을 던지며 삼진 28개를 잡아냈고, 볼넷은 6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WHIP 0.84, 피안타율 1할8푼3리로 세부 기록도 우수하다. 한화는 산체스가 나온 6경기 모두 이겼다.
특히 지난 10일 대전 LG전에서 8이닝 2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최고 투구를 선보였다. 6명의 좌타자들이 집중 배치된 LG 타선을 상대로 몸쪽을 집중 공략했다. 좌타자 상대로만 병살타 2개 포함 6개의 내야 땅볼을 이끌어냈다. 2회 문보경과 3회 신민재는 산체스의 몸쪽 붙는 직구에 2루 땅볼로 병살타를 쳤다.
이튿날 염경엽 LG 감독은 “우리 타자들의 타격감이 떨어진 것도 있지만 산체스 볼이 워낙 좋았다. 좌타자 몸쪽 승부가 효과적이다. 우리 좌타자들이 좌투수에게 약하지 않은데 150km 가까운 공이 몸쪽으로 들어오니 전부 먹힌 타구가 나왔다. 투구 메카닉이나 밸런스가 좋아 한 번에 빅이닝으로 무너지는 투수가 아니다. 한화가 좋은 투수를 데려온 것 같다”고 산체스를 높이 평가했다.
한화가 산체스를 영입할 때도 이 부분을 주목했다. 투수 출신인 김진영 한화 해외 스카우트는 “던지는 메커닉이 좋고, 직구 위주로 공격적인 승부를 하는 것을 주목했다”며 “가장 큰 포인트는 좌타자 상대 몸쪽 공이었다. KBO에선 좌타자 몸쪽으로 던지며 상대하는 좌투수가 별로 없다. 산체스는 그게 된다”고 밝혔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우리나라에선 좌타자 몸쪽을 공략하는 좌투수가 거의 없다. 본인이 미국 있을 때부터 그런 부분을 많이 연습했다고 한다. 패스트볼 무브먼트가 깨끗한 편이라서 코스 활용에 대한 갈망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좌투수들은 대부분 투구판 1루 쪽을 밟고 우타자 몸쪽, 좌타자 바깥쪽을 보고 던지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산체스는 투구판 중앙을 밟고 좌타자 몸쪽에 바짝 붙이는 공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뛰어난 좌타자들이 많은 KBO리그에서 더 빛을 볼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KBO리그에서 흔치 않은 유형의 투수이다 보니 좌타자들이 애를 먹는다. 좌타자와 50번 이상 맞붙은 투수 중 산체스(.200)보다 피안타율이 낮은 좌완은 NC 구창모(.189), KIA 이의리(.194) 2명뿐이다. 피OPS는 산체스(.459)가 구창모(.512), 이의리(.584)보다 낮다.
산체스는 “좌투수가 좌타자 몸쪽으로 던지는 게 굉장히 어렵다. 코스 공략을 배우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연습을 통해 습득했고, 경기에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좌투수 공이 좌타자 몸쪽으로 잘 들어가면 강한 타구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한화는 산체스가 나온 날 6전 전승으로 승률 100%로 승리 공식을 이어가고 있다. 최원호 감독은 “템포가 빠르고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다 보니 야수들의 공격력도 조금 더 상승하는 것 같다”고 봤다. 공을 받자마자 바로 투구에 들어가는 산체스의 초고속 인터벌도 KBO리그에선 흔치 않다. 경기당 평균 3.8득점으로 이 부문 리그 최하위인 한화 타선이지만 산체스가 등판하는 날에는 9이닝당 득점 지원 8.9점으로 대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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