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화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한 좌완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26)는 가족과 함께 입국했다. 아내와 19개월 된 딸이 한국행 비행기에 동승했다. 대개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혼자 먼저 들어오곤 하는데 가족을 대동한 산체스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선수단과 상견례 자리에서 “단순히 경험 쌓으러 온 것이 아니다”고 자신을 소개한 산체스는 “한국에서 1년만 하고 돌아갈 생각 없다. 2~3년 앞으로 계속 힘이 닿는 데까지 한국에서 오랫동안 야구하고 싶다”며 코리안드림 의지를 드러냈다.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단축 시즌 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경기(5⅓이닝)가 전부. 미국에서 빛을 보지 못하며 마이너리그를 전전한 산체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최원호 한화 감독도 “나이가 젊으니 나름 야망이 있을 것이다. 여기를 찍고 다음 플랜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괜찮을 것 같다”며 성공 의지가 남다른 산체스의 동기 부여를 기대했다.
영입 당시만 해도 한화가 개막전 60구 만에 방출된 버치 스미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급하게 영입한 ‘땜질’ 선수로 평가 절하되기도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산체스는 에이스급 투수였다. 지난 10일 대전 LG전에선 8이닝 2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KBO리그 데뷔 후 최고 피칭을 펼쳤다. 8회 마지막 타자 김민성의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낸 112구째 직구는 151km까지 찍혔다. 리그 최고 화력을 자랑하는 LG 타선을 압도하며 한화의 7-0 완승을 이끌었다.
이날까지 산체스가 등판한 6경기에서 한화는 전승을 거뒀다. 승률 100%. 개인 3승째를 거둔 산체스는 평균자책점도 1.39까지 낮췄다. 32⅓이닝 동안 삼진 28개를 잡으면서 볼넷은 6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WHIP 0.84, 피안타율 1할8푼3리로 세부 기록도 좋다. 특유의 빠른 투구 템포로 최고 153km, 평균 148km 강속구를 던진다. 좌타자 상대 몸쪽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는 커맨드와 우타자 상대 백도어 슬라이더, 커브로 타이밍을 빼앗는 변화구도 구사한다.
경기 후 산체스는 “커리어 처음으로 110구 이상 던졌다. 감정이 앞서 오버 페이스를 하면 팀에 안 좋을 수 있어 9회에 던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7회까지 투구수가 몇 개인지 몰랐다. 최대한 오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8회 마지막 타자 상대로 계속 파울이 나면서 전광판을 뒤돌아본 뒤 투구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선발등판 날 팀이 6전 전승을 거둔 것에 대해 산체스는 “기분이 굉장히 좋다. 이것이 한화가 나를 데려온 이유다. 내가 던질 때마다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늘이 커리어 최고 투구가 맞는 것 같다. 110구 이상 던진 것도 처음이고, 8이닝 무실점도 해본 적 없다. 한국이 내게 많은 선물을 주는 것 같다”며 웃은 뒤 “19개월 된 딸과 함께 온 아내도 한국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팀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에 아내도 기뻐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