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김대진 감독이 작품에 얽힌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의 찢어진 인생 봉합기를 그린 드라마. 지난 4일 마지막회를 방송한 가운데, 최근 ‘닥터 차정숙’의 종영을 맞아 연출을 맡은 김대진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4.9%의 한자릿수로 시작해 매 회 꾸준히 시청률 상승세를 그렸던 ‘닥터 차정숙’은 마지막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18.5%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대진 감독은 아쉽게 20%의 벽을 넘지 못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도 많이 바랐고 배우들도 내심 ‘20% 가는 거 아니냐’는 기대도 했다. 저도 ‘마지막회에서 한번 쯤은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벽이 너무 높더라”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넷플릭스 TOP10이 발표한 주간 비영어권 드라마 누적 시청시간 2위까지 오른 데 이어 JTBC 역대 시청률 4위에 이름을 올린 만큼 ‘닥터 차정숙’ 팀은 현재 포상휴가를 앞두고 있다. 김대진 감독은 “첫날, 마지막날에 회식하고 배우들이 쉬는 데에 초첨을 맞췄다”고 포상휴가 계획을 밝혔다. 다만 분위기 메이커 담당인 민우혁은 뮤지컬 ‘영웅’ 부산 공연으로 아쉽게 불참한다고 전했다.
‘닥터 차정숙’은 차정숙 역을 맡은 엄정화를 중심으로 김병철(서인호 역), 명세빈(최승희 역), 민우혁(로이킴 역) 등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린다. 처음 연출을 맡았을 때부터 엄정화, 김병철이 캐스팅된 상태였다는 그는 “승희와 로이킴 역할을 캐스팅하는 데 난항이 있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그는 “로이킴 역할은 여러 고민을 하던 중에 작가님이 먼저 민우혁 씨 얘기를 꺼냈다. 만나보니 기획안에 써 있는 인물 성격과 흡사했다. 미국에서 왔으니 미국 느낌이 있어야 했는데, 모든걸 갖춘 배우가 나타났다. 문제는 영어를 못하는 거 하나였다. 그 외엔 완벽히 우리가 찾던 사람이었고, 인호와 세웠을 때 그림이 재밌을 것 같았다. 인호와 로이가 극과 극이어야 한다는 것 보다는 두 사람만의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다 보니 투샷 그림이 재밌는지, 케미가 맞는 지를 고려해서 민우혁 씨를 선택했다. 신인이라 우려도 있었지만 노력해줬고, 그림이 다 완성되는 느낌이었다”고 만족감을 밝혔다.
김대진 감독이 로이킴 역할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인호와의 투샷이 ‘재미있는가’였다. 여자를 사이에 둔 연적일 수도 있지만, 차정숙이 살아난 걸 보고 껴안거나 유치한 남자들의 지질한 경쟁 장면도 등장하는 등의 개그 장면도 다수 등장하기 때문. 김대진 감독은 “동등한 위치보다는 로이가 나아 보이고 그걸 인호가 쫓아가는 그림이 더 재밌을거라 생각했다. 그게 쌓여야 나중에 ‘이제와서?’라는 대사가 힘이 있을 것 같았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하남자’ 서인호 캐릭터로 열연을 펼친 김병철에 대한 극찬도 이어졌다. 김대진 감독은 “김병철 씨가 완급 조절을 너무 잘 한다. 진지하고 슬픈 신과 웃긴 신을 오가는게 연출자로서 어렵다. 이 톤을 어디다 맞춰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김병철씨가 대본을 읽는 걸 보고 ‘이 사람한테 맞추면 되겠다’ 싶더라. 거기에 엄정화 씨를 얹으면 더 풍성해진다. 제가 느낀 김병철 씨의 연기는 피아노의 검은 건반이다. 검은 건반은 플랫도, 샵도 될 수 있지 않나. 여기에 엄정화의 메이저가 합쳐지면 메이저세븐으로 화려해 지는거다. 각자 잘 살리지만 합쳤을 때 상상도 못한 재밌는 게 많이 나와서 시청자들이 볼 대 더 재밌었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명세빈이 맡은 최승희 역할 역시 캐스팅에 어려움이 따랐던 자리였다. 서인호의 불륜 상대인 만큼 기피하게 되는 역할인 만큼 캐스팅 제의 역시 조심스러웠다고. 김대진 감독은 “‘닥터 차정숙’은 단죄하고 벌하는 드라마가 아니라 생각을 쥐어주는 작품인데, 그게 승희의 역할이다. 다른 드라마와의 차이점이 승희라고 생각한다. 승희가 나오면 불편하다. 그래서 많이 쳐내서 등장도 드문드문하다. 미안할 정도로 뭐가 없고, 나올 때마다 센 신들이 많다. 그로 인해 유추해가면서 승희 캐릭터 만들어야 했다. 배우의 역량이 있어야 비어있는 부분을 채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명세빈 씨가 여기에 부합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순한 사람이 이 역할을 해도 괜찮나?’ 싶었다. 그런데 누구나 연상되는 배우보다는 이분이 한다고 하면 오히려 신선하고 배우 자체로서도 지금 한 번 쯤은 새로운 캐릭터를 하는 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며 “인호의 경우 코믹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만 승희는 안고 가야 한다. 하지만 승희도 그만의 서사가 있다. 저는 마지막엔 시청자들이 승희를 욕만 하지는 않길 바랐다. 한 번 쯤 ‘얘도 안 됐다’고 생각해 준다면 그게 제가 보여주고 싶은 승희였고, 명세빈 배우가 용기 내서 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다 전했다. 제 말을 듣고 명세빈씨도 다행히 안심했다”고 밝혔다.
‘닥터 차정숙’ 전반에 깔려있는 것은 ‘모성’이었다. 김대진 감독은 “모성을 강조하는 것 까지는 아니라도 기저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작가님은 모르시더라. 공교롭게 이렇게 됐다”며 “작품을 감싼 포장이 모성이다. 누굴 해하고 파멸하고 끝을 향해가는 드라마는 아니더라”라고 전했다.
그 모성을 표현한 또 다른 캐릭터가 다름아닌 강지영이 맡은 미혼모 유지선 이었다. 김대진 감독은 “미혼모 캐릭터는 제일 많이 나왔다. 6회 분량이면 거의 절반 정도니까 중요한 역할이긴 한데, 드문드문 나와서 실질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을 만한 캐스팅을 하긴 쉽지 않아서 고 민했다. 그러다 캐스팅 디렉터가 ‘강지영씨 어떠냐’고 하더라. 본인이 하고 싶어 한다더라. 일본에서 연기한 경력이 있으니까 연기력에는 의심이 없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본인도 임신과 출산을 겪지 않았으니 엄마의 마음과 미혼모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눈물을 흘리더라. 알고 보니 친언니가 직전에 출산해서 육아를 하고 있었고 했다”고 캐스팅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너무 가라앉거나, 죽을걸 생각 하고 청승맞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전에 MBC에서 방송된 어떤 다큐에서도 시한부인데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나오더라. ‘이 캐릭터는 그런 부분에 중심을 맞춰서 할 수 있는걸 했으면 좋겠다,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고 죽는 게 더 슬플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그 부분을 너무 잘해주셨다”며 “방송 나오고 먼저 연락 왔더라. 고맙다고. 내가 더 고마웠다. 덕분에 일본에서 1등 하고 있지 않나. 감사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중 등장하는 아이들 역시 부모의 불륜 사실에 마냥 슬퍼하거나 엇나가지 않는 것이 ‘닥터 차정숙’의 특징 중 하나였다. 김대진 감독은 “이게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이나 심리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많이 알고 있더라. 정숙이와 인호가 아이들은 바르게 키웠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슬퍼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오히려 아버지한테 뭐라고 하고 엄마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이 시청자한테 어필이 됐던 것 같다. 가족 모아놓고 회의하고 아버지한테 뭐라고 하는 장면이 새롭게 다가온 것 같더라. 드라마도 조금씩 변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만 드라마의 결말에 대해서는 시청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렸다. 불륜을 저지른 서인호가 단죄가 아닌 이혼 후 병원장이 되는 엔딩에 일부 시청자들이 불만을 가진 것. 김대진 감독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무조건 이런 캐릭터는 파멸하고 망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차정숙’의 톤을 생각하면 현재 엔딩이 맞다고 생각한다. 만약 복수를 했다면 정숙이가 배를 타고 햇살을 맞으며 웃는 장면을 보면서 편하고 마음 따뜻해졌을 수 있었을까 싶다”며 “병원장은 허울에 불과하다. 그럼 뭐 하나, 가족이 없는데. 두 여자한테 다 선택도 못 받고. 남은 건 썰렁한 병원장실에서 눈물 흘리며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 뿐이지 않나. 그게 ‘차정숙’의 엔딩으로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닥터 차정숙’은 차정숙이 자신의 정체성, 삶을 찾는 이야기다. 승희, 인호도 여러가지 있었지만 각자의 삶을 찾아간다. 작가님이 착하신 분이라 누구를 추락시키거나 나쁘게 만들지 않는다. 파멸하고 머리채 잡고 끝까지 갈 수 있는 드라마도 아니고, 그런 장면을 배우들한테 시키기도 싫었다”며 “불륜 소재가 들어는 가는데 작가는 그걸 정통으로 다룰 생각 없었고 장치 중 하나로 생각했다. 정숙이가 결국 간이식 받고 새 삶과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가 큰 틀인데, 결국 장해물을 넘어서 목적을 성취하는 내용이다. 그 장해 중 하나가 남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코드를 넣는 순간 모두에게 강렬하게 보인다는 걸 알기때문에 작가님도 걱정이 많았다. 어차피 그 소재를 가지고 ‘부부의 세계’처럼 갈 엄두도 안 나고 그런 목적도 아니었다. 불륜이라는 불쾌한 소재가 있는걸 알기 때문에 너무 강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불편하지 않게 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며 “정면으로 불륜 이야기를 담아서 파멸시키는 것보다는, 어려움을 넘어서 내 삶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그 사람도 삶이 있을텐데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를 보여주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무리는 ‘차정숙’의 톤 앤 매너에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닥터 차정숙’의 결말은 결국 이혼 후 자신만의 삶을 찾은 차정숙의 완전한 ‘독립’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김대진 감독은 “시청자분들이 ‘닥터 차정숙’을 편하고 즐겁게 봤다면 만족한다. (시청자분들이) 많은 의의를 만들어준 것 같다. 단순히 경력 단절녀를 떠나서 많은 정숙이들이 있지 않나. 이루고싶었던 꿈이 있었지만 좌절됐다가 다시 힘을 얻고 스스로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정숙이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직 늦지 않았다’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실제 엄정화 누나도 많은 DM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드라마 PD를 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미디어를 이용해서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전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만큼인지는 몰라도, 영향을 받은 분들이 있다는 걸 보니 조금이라도 의의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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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강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