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42년 역사에서 17명밖에 누리지 못한 ‘영구결번’ 레전드도 아들이 야구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레전드도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야구 방망이를 잡은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어느새 프로 진출을 바라보는 고교 3학년 ‘외야수 최대어’로 훌쩍 자랐다. 통산 2043안타로 LG 영구결번(9) 레전드인 이병규(49) 삼성 수석코치의 장남 이승민(18·휘문고)이 그 주인공이다.
이승민은 지난 6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제1회 한화 이글스배 ‘고교 vs 대학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고교 올스타 팀의 3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한 이승민은 5타수 2안타 1볼넷으로 3출루 경기를 펼치며 수훈상을 받았다.
1회 첫 타석부터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3구째를 받아쳐 중전 안타로 포문을 연 이승민은 4회에도 좌측으로 맞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렸지만 유제모의 다이빙 캐치에 걸려 아웃됐다. 5-3으로 역전한 무사 1,2루에선 3루 쪽으로 희생번트도 잘 댔다.
7회에는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절묘한 배트 컨트롤로 잡아당겨 우익수 앞 안타로 장식했다. ‘배드볼 히터’로 유명한 아버지 이병규 코치의 현역 시절을 떠올리게 한 타격이었다. 이어 6-5로 앞선 9회 2사 1루 마지막 타석에선 박지환이 2루 도루를 하자 자동 고의4구로 1루에 걸어나갔다.
경기 후 이승민은 “타점 기회에 고의4구가 나와 아쉬웠다. 고의4구가 처음은 아니다. 올해 정식 게임에서도 3번 정도 있었다”며 “그동안 번트를 댈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영복) 감독님의 번트 사인이 나서 기습 번트처럼 해봤다. 평소에도 번트 연습을 했고, 기회가 되면 대고 싶었다”고 깔끔한 번트에도 자부심을 보였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188cm, 90kg 건장한 체격을 갖춘 좌투좌타 외야수 이승민은 2학년 때부터 주축 타자로 자리잡았다. 올해도 10경기 타율 3할6푼1리(36타수 13안타) 1홈런 8타점 4볼넷 8삼진 OPS 1.033을 기록 중이다. 장타력을 갖춘 외야 최대어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도 포함됐다. 다가올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상위 지명이 기대된다.
이승민은 “아시안게임은 예비 명단이라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드래프트에서 외야수 중에서 1번으로 지명되고 싶다. 전체로는 3라운드 이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아버지가 많이 반대하셨다. 그래서 제가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직 제가 아버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지만 아버지 아들이란 타이틀보다 제 이름 그대로 불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출중한 타격 실력을 자랑하는 이승민은 쇼맨십과 동료애도 갖췄다. 이날 홈런 레이스에 참가하며 양팔을 들고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한 이승민은 7회 팀 동료 투수 김휘건(휘문고)이 한 타자 상대로 공 4개만 던지고 볼넷으로 내려오자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기도 했다.
이승민은 “휘건이가 올스타전이라는 좋은 경기에서 즐거움을 짧게 느낀 것 같아 아쉬워하더라. ‘괜찮다. 다음 기회도 있다. 우리 같이 청소년 대표팀에 가면 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이승민의 위로가 힘이 됐는지 김휘건도 중계 카메라를 보고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쉬움을 달랬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