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유격수 자리에 마(魔)라도 낀 것일까.
한화는 지난해 11월 대전 마무리캠프 막판에 주전 유격수 하주석(29)이 음주운전에 적발돼 비상이 걸렸다. 당시 FA 영입을 위해 시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한화는 예기치 못한 변수에 계획을 일부 수정해야 했다. KBO로부터 7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하주석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 내야수 오선진(34)을 FA 영입했다.
오선진은 올 시즌 38경기를 뛰며 타율 2할3푼3리(86타수 20안타) 7타점 13볼넷 출루율 3할4푼6리로 쏠쏠하게 활약 중이다. 시즌 초반 박정현과 유격수 자리를 분담했지만 4월말부터 붙박이로 고정됐다. 5월 이후 20경기 타율 3할2푼6리(46타수 15안타) 10볼넷 출루율 4할6푼6리로 활약했다. 유격수(169⅔이닝), 3루수(22이닝), 2루수(15이닝)를 넘나들며 총 206⅔이닝 무실책으로 견실한 수비를 자랑, 공수에서 한화의 5월 반등을 이끌었다.
그러나 오선진은 지난 1일 대전 키움전에서 8회 상대 투수 김준형의 5구째 직구에 헤드샷 사구를 당했다. 턱에 공을 맞은 뒤 얼굴을 감싸쥐며 고통을 호소한 오선진은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이송됐다. CT 검사 결과 골절은 피했지만 턱이 2cm가량 찢어져 30바늘 이상 궤매는 봉합 수술을 했다. 실밥을 푸는 데 일주일 정도는 걸린다. 오른쪽 햄스트링도 좋지 않은 상태라 이참에 확실히 쉬면서 치료를 한다.
이에 따라 당분간 백업 유격수 이도윤(27)의 임무가 막중해졌다. 이도윤은 지난달 20일 1군 콜업 후 유격수로 7경기를 선발출장했다. 오선진이 햄스트링 통증을 호소한 뒤 유격수 자원이 필요해진 한화는 이도윤을 콜업됐다. 유격수로 9경기(7선발) 62이닝을 소화한 이도윤은 실책 없이 안정감 있는 수비를 선보이고 있다. 경쾌한 스텝으로 좌우 넓은 범위를 커버하고 있고, 송구 강도나 정확성도 좋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이도윤은 수비가 좋은 선수다. 수비만 보면 오선진이 오기 전에는 팀 내에서 하주석 다음 유격수였고, 지금은 오선진 다음이라는 게 당당 수비코치들의 평가”라며 “그동안 타격이 약하다 보니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했다. 요즘은 타격에서 하나씩 잘 쳐주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도윤은 “수비에서 선진이형은 논외다. 저보다 두 단계 높다. 저는 선진이형을 따라하는 정도”라며 자세를 낮춘 뒤 “유격수는 오래 봐서 수비 부담이 덜하다. 마음 편하게 하다 보니 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1군에서 통산 152경기 타율 1할6푼9리(201타수 34안타)로 타격이 약점이었지만 올해는 11경기 타율 2할5푼(32타수 8안타)을 기록하고 있다. 초구 타격시 7타수 3안타로 좋다. “불리한 카운트가 되기 전에 승부를 보려고 하다 보니 치기 좋은 공을 안 놓치는 것 같다. 하위 타선이다 보니 투수들이 바로 승부를 들어오는데 그걸 쳐보려고 한다”는 게 이도윤의 설명이다.
천안 북일고 출신 우투좌타 내야수 이도윤은 지난 2015년 2차 3라운드 전체 24순위로 한화에 입단했지만 2군에 머문 시간이 많았다. 2018년 1군 2경기 1타석을 끝으로 군입대했고,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2020년 시즌 막판 1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2021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부임 후 2년간 1군에서 전천후 백업 내야수로 각각 56경기, 80경기를 출장했다.
수베로 전 감독은 이도윤을 무척 아꼈다. “글러브 워크가 부드럽고, 수비가 강한 선수로 위기에서 팀의 실점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이도윤의 수비력을 높이 평가한 수베로 전 감독은 “항상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훈련한다. 내야 주전이 어느 정도 세팅돼 있어 경기를 많이 뛸 수 없는데도 늘 파이팅을 내고 훈련 분위기를 이끈다”며 칭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