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뗀 건 아니고…그냥 변화 한번 줘봤다.”
올해부터 키움 주장을 맡은 이정후(25)의 유니폼 왼쪽 가슴 아래에는 캡틴(Captain)의 약자로 ‘C’자가 새겨져 있었다. KBO리그 10개 팀에서 유일한 20대 주장으로 이정후에게 유독 ‘C’자가 더 눈에 띄었다.
그런데 이정후는 지난달 17일 고척 두산전부터 유니폼에서 ‘C’자를 뗐다. 주장을 그만둔 것은 아니지만 극심한 타격 부진과 저조한 팀 성적에 짓눌린 나머지 이정후는 “이게 있어 잘 안 되나?” 하는 혼자만의 생각까지 했다. C자가 없는 유니폼도 지급되자 기분 전환을 위해 변화를 줬다. 헤어 스타일도 까까머리 가깝게 정리하며 심기일전했다.
이정후는 “주장의 부담감이 뭔지 잘 몰랐는데 어느 정도 있더라. 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모르겠는데 잘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내가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더라”며 “어릴 때 형들이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는 매일 경기를 해야 하고, 잊을 건 빨리 잊으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는 말을 하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 팀으로 올해 대권 도전에 나선 키움은 개막 두 달이 지난 상황에서도 반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안정된 선발진을 중심으로 투수력은 괜찮지만 팀 OPS 9위(.661)로 타선이 터지지 않고 있다. 이정후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1일까지 49경기 타율 2할6푼7리(195타수 52안타) 4홈런 25타점 OPS .738로 이정후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이다.
내년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며 시즌 전 타격폼 조정을 했지만 독이 됐다. 4월 한 달간 22경기 타율 2할1푼8리(87타수 19안타) 3홈런 13타점 OPS .678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난 2017년 데뷔 후 이렇게 타격 부진이 오래 간 적이 없었다. 팀 성적 부진과 맞물려 이정후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하지만 5월에는 26경기 타율 3할5리(105타수 32안타) 1홈런 12타점 OPS .783으로 어느 정도 반등을 이뤘다. 6월 첫 날인 1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4회 2사에서 수비 시프트를 무너뜨리는 좌전 안타로 상대 선발 문동주의 퍼펙트 행진을 깼다. 9회에는 볼넷을 골라내며 멀티 출루에 성공했다.
이정후는 “5월부터는 아웃이 되더라도 납득할 수 있는 좋은 타구들이 나왔다. 4월은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싶다. 데뷔하고 나서 이렇게 안 좋았던 적은 처음이지만 그런 시기도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팬분들께 죄송하고, 팀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감독님·코치님들께 죄송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구를 조금 다르게 보는 시야도 생긴 것 같다. 마냥 안 좋게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야구가 안 되면서 생각도 많아졌지만 이제는 단순하게 본능에 믿고 맡길 참이다. 이정후는 “타석에서 너무 생각이 많았다. 공이 왔을 때 저의 눈과 손을 믿으려 한다. 타격이란 그런 감각과 순간적인 본능이 중요하다. 안 좋은 생각이 본능을 누르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최대한 저의 눈과 손을 믿고 투수의 공에 본능적으로 반응하자는 생각으로 타격을 하고 있다”고 변화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