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영하(26)는 학교폭력 가해자가 아니었다. 피해 호소인의 기억 왜곡에 의한 신고로 9개월 가까이 법정 공방을 펼친 끝에 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제2의 이영하를 막기 위해선 유명인 또는 공인을 상대로 한 ‘아니면 말고’식의 신고를 막을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정금영 부장판사)은 지난달 31일 오전 학교폭력 혐의로 기소된 이영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과 관련해 피해자의 진술은 객관적 증거나 다른 야구부원 진술과 대치된다. 그대로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사건은 공소사실은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라고 했다.
이영하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학교폭력 미투 논란에 휩싸였다. 2021년 2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선린인터넷고 시절 이영하와 김대현(LG)으로부터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폭로 글이 올라오면서 순식간에 학폭 가해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혔다. 이후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의 폭로자 인터뷰가 이어지며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이영하, 김대현 학폭 미투 사태는 2022년 피해자가 스포츠윤리센터에 이들을 신고하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이후 경찰 수사와 함께 재판 회부가 결정됐고, 이영하는 지난해 9월 21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올해 5월 초까지 총 6차례의 공판에 참석,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증인을 총동원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에 2년 구형을 요청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해자의 기억 왜곡에 의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영하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이영하의 가해를 주장했던 시기, 장소에 모두 이영하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골자였다. 이영하 측 변호인인 법무법인 지암의 김선웅 변호사는 “피해자가 주장하는 부분이 사실상 사실이 아니었다. 기억이 왜곡된 걸 알고 있었다. 객관적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죄라는 확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9개월의 법정 공방 끝 무죄를 선고받은 이영하. 그러나 그는 이 기간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징계를 이행하고 있었다. 법적 징계가 아닌 낙인에 따른 사회적 징계를 말한다. 이영하는 2022시즌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다가 8월 13일 잠실 SSG전을 끝으로 1군 말소됐다. 이후 그라운드가 아닌 법정에서 시즌을 마무리했고, 2023시즌 미계약 보류선수로 분류되며 아예 연봉 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영하는 프로 구단 소속임에도 2군 캠프에서 개인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억울한 누명을 벗었지만 잃어버린 9개월에 대한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는다. 이영하는 학폭 가해도 아닌 혐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 기간 연봉을 받지 못했고, 범죄자라는 손가락질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새 시즌 선수 계약까지 무기한 연기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1군 등록일수 또한 100일 가량 손해를 보며 향후 FA 자격 취득 또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학폭 미투 사태의 가해자가 순식간에 피해자가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김선웅 변호사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스포츠윤리센터 사건 신고 이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로 넘어갔고 그게 학폭 미투 형태로 언론에서 이슈화가 됐다. 수사 기관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가운데 검찰까지 넘어갔다”라며 “아마 이영하에 대한 조사 기회가 있었다면 검찰 단계에서 혐의가 벗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공소시효에 쫓겼을 수도 있지만 이영하와 관련한 조사 과정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통해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신고 또는 사회적 낙인이 없어져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선웅 변호사는 “피해자가 여자배구 쌍둥이 자매를 보고 용기를 얻어서 폭로했다고 했다. 그런데 사건을 다루면서 보니 이영하보다 지도자와의 문제가 더 크더라. 피해자는 이후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학폭을 다룰 때 중화장치가 필요하다. 확인을 하고 잘못한 가해자가 있으면 언론에 공개하기보다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해결할 수 있는 분쟁 조정 기구가 필요한 것 같다”라며 “스포츠윤리센터가 만들어졌지만 그곳은 여전히 여론에 휘둘려서 처벌한다. 문제가 있다. 스포츠윤리센터가 아닌 과거사 진실 화해 위원회 같은 기구가 만들어져야한다. 그러면 기억 왜곡으로 낙인 찍고 가는 걸 피할 수 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한편 이영하는 피해 호소인을 손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날 법원에서 만난 그는 “피해자라고 하는 친구도 자기만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당시 투수조장으로서 그런 부분을 더 케어해주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 때는 후배이자 좋은 동생이었다. 딱히 그런 생각은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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