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저도 그랬는데…너무 아깝더라구요.”
한화의 FA 모범생 채은성(33)은 지난 23일 대전 KIA전에서 1회 첫 타석에 삼진을 당한 신인 문현빈(19)을 붙잡고 덕아웃에서 한참 대화하는 모습이 잡혔다. 앞서 3-0으로 앞선 1사 만루에서 문현빈은 KIA 투수 숀 앤더슨의 5구째 바깥쪽 직구에 어정쩡한 체크 스윙을 하다 삼진 아웃됐다.
아쉽게 덕아웃에 들어온 문현빈에게 채은성이 다가갔다. 채은성은 결과보다 과정이 아쉬웠다. 그는 “득점권에서 (문현빈이) 너무 방어적인 모습이 몇 번 보였다. 상대 투수가 많이 흔들리고, 볼을 계속 던지는 상황이었다. 투수가 승부를 들어가야 할 상황인데 굳이 타자가 방어적으로 불리해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해줬다”고 말했다.
당시 KIA 선발투수 앤더슨은 1회부터 3점을 내주며 급격하게 흔들렸다. 문현빈 앞 타자 장진혁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주며 수세에 몰린 상태였다. 그러나 문현빈은 1구와 3구 스트라이크로 들어온 직구를 흘려보냈고, 볼카운트 2-2에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채은성은 “그런 상황에선 존에 들어오는 공을 굳이 고르지 않아도 된다. 주자를 모으는 상황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해도 된다. 만루에선 굳이 안타가 아니어도 그라운드에 타구만 굴려도 점수가 나는 상황이다. 불리한 카운트로 어렵게 가서 삼진을 먹고 들어오는 것이 너무 아깝더라. 허망하게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였다”고 돌아봤다.
채은성 스스로도 어릴 때 경험하며 느낀 부분이다. 지금은 KBO리그에서 가장 찬스에 강한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한 채은성이지만 “저도 어릴 때 그랬다. 경험을 통해 그런 상황에선 안타를 못 칠지언정 무조건 타점 낸다는 생각을 갖고 한다. 그게 쌓이다 보면 자기 기록이 되고, 팀에도 플러스가 된다”고 말했다.
피와 살이 되는 채은성의 조언을 받은 뒤 문현빈의 스윙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날부터 5경기 연속 안타를 치며 타율 3할3푼3리(21타수 7안타) 3타점 1볼넷을 기록 중이다. 신인답지 않게 공 보는 능력과 컨택이 좋은 타자인데 승부처에서 배트도 과감하게 내며 결정력까지 뽐내고 있다.
당장 23일 KIA전에서 5회 무사 1루에서 앤더슨의 2구째 슬라이더를 밀어쳐 좌측 왼쪽으로 빠지는 1타점 2루타를 쳤고, 27일 창원 NC전에선 5회 무사 2,3루에서 이재학의 초구 체인지업에 배트가 헛돌았지만 2구째 낮은 직구를 공략해 2타점 중전 적시타로 장식했다. 3-0으로 스코어를 벌린 한 방으로 팀 승리에 결정타가 됐다.
문현빈은 “기회에서 좋은 공을 치기 위해 공을 많이 고르고 보는 편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삼진을 당하고, 카운트도 많이 몰렸다. 그런데 채은성 선배님께서 ‘치기만 하면 어떻게든 주자가 들어올 수 있으니 존에 비슷한 공이 들어오면 방망이를 돌려라고 조언해주셨다. 딱 그 상황이 와서 방망이를 돌렸는데 결과가 좋게 잘 나왔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한 채은성의 영향력도 크지만 그걸 빠르게 실행으로 옮긴 문현빈의 적응력도 예사롭지 않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올해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한화에 지명된 문현빈은 개막 로스터에 들어 지금까지 계속 1군에 뛰고 있다. 40경기 타율 2할2푼1리(104타수 23안타) 11타점 7볼넷 출루율 2할7푼으로 기록은 뛰어나지 않지만 공수에서 키워볼 만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주 포지션은 2루수이지만 중견수 자리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며 공수에서 폭풍 성장을 거듭 중이다.
고정적인 실전 경험과 타격 집중을 위해 문현빈의 2군행을 고려한 최원호 한화 감독도 이제는 중견수로 거의 고정시키며 주전급으로 밀어줄 태세. 최원호 감독은 “문현빈이 주력도 있고, 수비 범위도 갖추고 있다. 타격에서 공을 보는 것이나 선택하는 게 나이에 비해 좋다. 이런 선수들은 꾸준히 경기에 나가봐야 한다”며 주전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