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메이저리그 5선발로 풀시즌을 보낸 NC 외국인 투수 에릭 페디(30)가 KBO리그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아이들이 노는 곳에 어른이 온 것 같다.
페디는 지난 26일 창원 한화전을 6이닝 5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NC의 11-0 대승을 이끌었다. 이날까지 시즌 10경기에 등판했는데 61⅓이닝을 던지며 8승1패 평균자책점 1.47 탈삼진 80개 WHIP 1.01을 기록하고 있다.
다승·평균자책점 1위, 탈삼진 2위, 이닝·WHIP 3위로 리그 최정상급 성적을 찍고 있다. 탈삼진 1위 안우진(키움·81개)에 1개 차이로 따라붙으며 외국인 투수 최초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1위 ‘트리플 크라운’까지 넘보고 있다.
평균 148.2km 투심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스위퍼, 체인지업, 커터 등 4가지 구종을 원하는 곳으로 커맨드하며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32.3%에 달하는 탈삼진율뿐만 아니라 땅볼/뜬공 아웃 비율도 2.23으로 독보적인 리그 1위다.
지난해 12월 NC와 KBO리그 신규 외국인 선수 상한액 100만 달러에 계약할 때부터 페디는 한국에 왜 왔는지 궁금증을 낳았다. 지난 2017년 워싱턴에서 빅리그 데뷔 후 6년을 뛴 페디는 최근 2년 연속 선발로 풀타임 선발로 시즌을 보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팀 워싱턴의 5선발로 27경기(127이닝) 모두 선발등판했지만 6승13패 평균자책점 5.81로 부진했고,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다. 눈높이만 낮추면 미국 잔류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페디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커리어에 반전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빠르게 접촉한 NC와 계약했다.
페디는 지난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 한국에 온 이유를 밝혔다. 당시 그는 “야구 커리어에서 첫 FA 자격을 얻었다. 한국이라는 곳에서 새로운 야구를 경험하며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야구 커리어가 끝났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며 한국을 먼저 경험한 선수들에게 추천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중 한 명이 2020년 SK(현 SSG), 2021~2022년 한화에 몸담았던 우완 투수 닉 킹험(32)이었다. 페디는 “킹험과 비시즌에 같이 훈련하면서 한국행 결정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킹험이 한국에 갔을 때 장점과 좋은 부분을 많이 얘기해줬다. 개인 통역이 있고, 선수에 대한 지원도 좋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킹험은 SK와 한화에서 모두 부상으로 방출된 ‘유리몸 외인’. 하지만 2021년 25경기(144이닝) 10승8패 평균자책점 3.19로 활약하며 건강하면 좋은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고, 지난해 3월에는 한국에서 아내가 아들을 출산하기도 했다. 당시 킹험은 “한국의 산부인과는 정말 판타스틱하다. 시설도 좋고,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지원해준다. 한국에서의 출산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몸이 받쳐주지 않아 롱런하지 못했지만 한국을 좋아한 킹험은 페디에게도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며 결심을 굳히는 데 도움을 줬다. 지난해 6월 상완근 부상으로 한화에서 방출된 킹험은 현재 대만에 있다. 지난 5일 대만프로야구 중신 브라이더와 계약하며 아시아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 대만 입국 후 2군에서 2경기 7이닝 4실점(3자책)을 기록하며 1군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킹험의 추천으로 한국행을 결정한 페디는 야구 인생에 큰 반전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에 오면서 가다듬은 스위퍼, 체인지업 등 구종 개발과 발전으로 지난해 워싱턴 시절과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벌써부터 메이저리그 유턴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들이 페디를 체크하는 중이다. 페디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는데 미래의 일이다.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지금은 다음 경기 투구만 생각한다. NC에 집중할 것이다”고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