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전 면담 자리가 결국 130승이라는 대기록으로 이어졌다. 장원준(38·두산)이 이승엽 감독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장원준은 지난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삼성과의 시즌 3차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외국인투수 딜런 파일의 대체 선발로 나서 무려 5년 만에 아홉수를 극복하는 기쁨을 누렸다.
2020년 10월 7일 SK(현 SSG)전 이후 958일 만에 선발 등판한 장원준은 2018년 5월 5일 LG전 이후 1844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며 역대 11번째, 좌완 4번째 통산 130승을 달성했다. 또한 37년 9개월 22일에 130승을 거두며 한화 송진우(34세 4개월 18일)를 제치고 역대 좌완 최고령 130승 기록을 경신했다. 우완투수까지 포함하면 KIA 임창용(42세 3개월 25일)에 이은 역대 최고령 130승 2위다.
경기 후 만난 장원준은 “일단 승리투수까지 생각은 안 했다. 최소 실점해서 어떻게든 5이닝만 버티자는 마음이었는데 타선이 집중력을 발휘해 점수를 뽑아줘서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라며 “양의지와 5년 만에 배터리를 이뤘는데 오늘은 의지만 믿고 의지 미트만 보고 던졌다. 호흡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130승 소감을 전했다.
장원준은 과거 두산 왕조의 서막을 연 장본인이다. 2015시즌에 앞서 4년 총액 84억 원에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첫해 12승, 이듬해 15승을 거두며 2년 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2017년에도 14승을 올리며 롯데 시절이었던 2008년부터 8년 연속 10승을 달성했다.
장원준은 두산 4년차부터 원인 모를 부진과 부상에 신음했다. 2018년 24경기 3승 7패 2홀드 평균자책점 9.92를 시작으로 2019년 6경기, 2020년 2경기 출전에 그치며 에이스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2020년 2경기 평균자책점 12.71의 충격 속 은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장원준에게 포기는 없었다. 절치부심한 그는 2021년 32경기 1패 1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6.75로 부활 기지개를 켠 뒤 작년 27경기 1패 6홀드 평균자책점 3.71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장원준은 “계속 불펜을 하면서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다. 이렇게 그만두면 후회하고 아쉬움이 남을 거 같아서 올해는 후회와 미련 남기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라며 “괜히 내 공을 못 던져서 볼넷 내주고 내려올 바에는 그냥 초구 가운데 던져서 홈런 맞더라도 이제 내 공이 안 통한다는 걸 느끼는 게 미련이 안 남을 거 같았다”라고 부진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이어 “심리적으로 많이 쫓겼던 것 같다. 빨리 복귀해서 빨리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2군에서 준비할 때 너무 급하게 한 게 역효과가 나면서 부진의 기간이 길어졌다”라며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갖고 있던 원래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걸 찾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 예전 투구폼이 안 나오는 데도 자꾸 그 폼을 쫓아가려고 했던 게 오히려 더 안 좋아지고 제구가 흔들렸다”라고 덧붙였다.
2022시즌을 마치고 은퇴 위기에 처한 장원준은 이승엽 신임 감독과의 면담 자리에서 현역 연장 의지를 어필했다. 선수의 진심을 느낀 이 감독은 “우리 팀에 좌완투수가 부족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129승을 거둔 투수가 다른 팀을 알아보고, 알아봤는데 잘 안 되면 불명예다. 본인이 은퇴 생각이 없는데 그만두라고 하는 건 아니다”라며 선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장원준은 “감독님께서 당시 내 생각을 먼저 물어보셨다. 그래서 더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기사에도 나왔듯 감독님께서 팀을 못 구해서 은퇴하는 건 너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올해 기회를 줄 테니 한 번 잘해보자고 말씀하셨다”라며 “늘 마음 한구석에는 선발 등판 의지가 있었다. 잘 안 돼서 그만두더라도 꼭 선발로 던지고 싶었는데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후회 없이 던졌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장원준은 퓨처스리그에서 투심 연마를 제안한 권명철 투수코치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2군 내려갔을 때 권명철 코치님이 투심을 던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 나도 예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권 코치님이 다시 추천해주셔서 연습을 해봤다”라며 “2군에서 선발로 던지면서 연습했던 게 잘 먹히더라. 투심 던지다가 직구를 던지면 더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5년 만에 승리투수가 되며 마침내 130승 투수가 된 장원준. 이제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목표는 없다”라고 웃으며 “지금처럼 팀이 원하는 위치에서 팀이 이길 수 있는 투구를 하는 게 내 역할이고 목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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