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 타자에게 만루 홈런…김원형 감독이 격앙됐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3.05.24 09: 30

[OSEN=백종인 객원기자] 1-1이던 4회 초다. 홈 팀이 2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큰 불안감은 없다. 상대가 9번 타자다. 가장 약한 타순인 게 다행이다. (23일 인천, LG-SSG전)
아니나 다를까. 초구부터 우위를 점한다. 144㎞짜리 패스트볼이 한 가운데를 통과한다. 타자는 꼼짝 못 하고 지켜볼 뿐이다. 2구째는 더하다. 먼 쪽 높게 날리는 체인지업(126㎞)이었다. 어처구니없는 헛스윙이 나온다. 카운트 0-2. 이젠 더 볼 것도 없다. 무슨 공으로 끝내느냐만 남았다.
그리고 3구째다. 같은 구질이 하나 더 온다. 체인지업(127㎞)이다. 그런데 반전이다. 이걸 잡아낸다. 완벽한 타이밍에 걸렸다. 발사각도 28.8도, 출구 속도 153㎞의 타구가 서쪽 하늘로 날았다. 기예르모 에레디아가 담장 아래서 혼신의 점프를 뛰었지만 빈손이다. 비거리 107.9미터의 그랜드슬램. 이날 승부를 한 방에 정리했다. 3루 쪽 응원석의 카드 하나가 눈에 띈다. ‘1등은 LG야, 둘이 될 순 없어.’

23일 인천 SSG전에서 LG 김민성이 만루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3.05.23/ksl0919@osen.co.kr

주인공은 별 내색이 없다. 무심한 듯 베이스를 돈다. 유난스러운 세리머니도 없다. 홈에 들어오며 잠깐 환호할 뿐이다. 오히려 덕아웃이 분위기를 띄운다. 특히 염경엽 감독이 신났다. 장난기도 발동한다. 선수들의 강력한 하이 파이브를 피하는 척, 몸을 사린다. 슬랩스틱이다.
같은 시각, 반대편은 심각하다. 랜더스 벤치에 싸늘한 냉기가 돈다. 김원형 감독의 격앙된 모습이다. 옆에는 배터리 코치(정상호)가 난감한 표정이다. 뭔가 볼 배합에 대한 얘기 같다. 왜 아니겠나. 2사 후였다. 볼카운트도 0-2로 유리했다. 거기서 당한 것이다. 하필이면 9번 타자에게 말이다.
SPOTV 중계화면
하지만 던진 쪽 잘못은 크지 않다. 오히려 잘 떨어진 체인지업이다. 가장 먼 쪽 낮은 코스로 타고 들어갔다. 아마 그냥 놔뒀으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을 공이다. 배트가 나와도 헛스윙, 잘해야 내야 땅볼 정도가 될 투구다.
그런데 그걸 쳤다. 그것도 제대로 반응했다. 이건 타자를 칭찬해야 한다.
당사자의 소감이다. 역시 담담하다. “투수는 좋은 코스에 좋은 공을 던졌다. 그런데 배트에 나쁘지 않게 맞았다. 불리한 카운트여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중에 뭘 노릴까 고민했다. 몸쪽 슬라이더는 포기하고, 바깥쪽 체인지업에 좀 더 비중을 뒀다. 욕심부리지 않았고, 운이 좋았다.”
가장 약한 9번 타자에게 걸렸다고? 천만에 모르시는 말씀이다. 그 팀에서 가장 겁나는 게 그 자리다. 이미 장안에 소문이 자자하다. 이상한 타선이다. 내려갈수록 강자들이 나온다. 7번이 리그 홈런 1위이고, 8번은 리그에서 타구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
그리고 9번 타자? 사실 그 타순이 가장 두렵다. 10개 구단 중에서 최강이다. 웬만한 팀의 3~4번 라인보다 기록이 좋다. 타율은 리그 평균(0.231)을 훨씬 웃돈다. 무려 0.316이다.
그러다 보니 ‘승진 코스’가 됐다. 박해민(0.283)이 그 타순에서 감을 잡고 2번으로 올라갔다. 홍창기도 비슷하다. 컨디션이 별로일 때 이 자리에서 5타수 3안타를 쳤다. 그리고 1번으로 복귀했다. 이천웅(3타수 3안타), 정주현(3타수 2안타), 신민재(6타수 3안타)가 신바람을 내는 자리다. 만루 홈런의 주인공도 여기서 11타수 3안타(0.273)를 기록 중이다.
◇ 팀별 9번 타순 타격 성적 (참조 STATIZ)
STATIZ 캡처
타율만 높은 게 아니다. 심심치 않게 장타도 터진다. 2루타 7개, 홈런 4개가 9번 타순에서 나왔다. OPS가 0.804로 리그 평균(0.606)을 훨씬 앞선다. 심지어 그 팀의 4번 타순(타율 0.316, OPS 0.775)보다 세다.
반면 랜더스가 유독 취약한 곳이기도 하다. 이 타순에서 타율이 0.159, OPS는 0.467로 리그 최하위다. 김민식(0.203), 이재원(0.043), 조형우(0.200) 등이 메우던 자리다.
얼마 전 박동원이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 화제였다. “우리 팀 타선을 보면 나를 제외하고는 숨이 막힐 정도로 좋다. LG 타자들과 상대하지 않는 건 (포수로서) 큰 행운인 것 같다. 우리 투수들에게 ‘LG타자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얘기하고 싶은 정도다.”
트윈스는 팀 타율 1위(0.291)를 독주하고 있다. 꼴찌 이글스(0.224)는 말할 것도 없다. 2위 다이노스(0.270)와도 꽤 차이가 난다. 이는 하위 타선이 강한 덕분이다. 쉬어 가는 자리로 여겨지는 9번까지 이렇게 강하다. 어찌 보면 1등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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