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이 될 것 같다. 한화의 ‘플랜B’ 외국인 투수인 좌완 리카르도 산체스(26)가 3경기 연속 호투하며 KBO리그에 빠르게 연착륙 중이다.
산체스는 지난 23일 대전 KIA전에 선발등판, 5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8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화의 9-5 승리를 이끌었다. KBO리그 데뷔 3경기 만에 첫 승을 신고하며 평균자책점을 1.00에서 0.64로 낮췄다. 14이닝 동안 안타 8개, 볼넷 1개를 내줬을 뿐 삼진 12개를 잡았다. WHIP 0.64, 피안타율 1할6푼4리. 아직 표본이 많아 성공을 논하기 이르지만 인상적인 성적으로 대박 외인 탄생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타자에게 준비할 틈도 주지 않는 빠른 투구 템포가 강점인 산체스는 앞서 2경기에서 직구 구사 비율이 높았다. 그런데 이날은 변화구 활용을 대폭 늘려 8개의 삼진을 잡아냈다. 트랙맨 기준으로 최고 153km, 평균 150km에 달하는 직구(43개)뿐만 아니라 슬라이더(24개), 체인지업(15개), 커브(9개), 투심(2개)까지 5가지 구종을 구사했다.
첫 2경기에선 직구 중심으로 패턴이 단조로운 편이었지만 이날은 3가지 변화구를 결정구로 고르게 썼다. 1회 김선빈 상대로 바깥쪽 꽉 차는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을 뺏어냈고, 2회에도 한승택에게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3회 좌타자 류지혁에겐 몸쪽 승부 이후 바깥쪽 흐르는 커브로 루킹 삼진 잡았다. 4회 이우성에게도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경기 후 산체스는 “지난 경기가 끝난 뒤 베테랑 투수들에게 상황별로 어떤 변화구를 사용하면 좋을지 물어보며 조언을 얻었다. 그 부분을 오늘 경기에 적용하면서 좋은 결과를 냈다”며 “KBO 공인구가 미국보다 조금 작은데 그 부분도 거의 적응이 됐다. 어떤 변화구든 던지기 부담스러운 게 없다”고 자신했다. 루킹 삼진만 4개나 될 정도로 제구도 잘 이뤄졌다.
먼저 베테랑 선수들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오픈 마인드가 돋보인다. 이날 당초 투구수 최대 90구를 계획했는데 먼저 “95구까지 던지겠다”며 자원하는 의지를 보였다. 5이닝 93구로 끝낸 최원호 한화 감독은 “선발투수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산체스를 칭찬했다.
최원호 감독은 이날 경기 전에도 산체스에 대해 “투구 템포가 좋고, 제구도 괜찮다. 직구 평균 구속도 140km대 후반으로 우리나라 기준으로 봤을 때 좋다”며 “나이도 27살로 어리다. 최근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 꾸준하게 돌았다. 여러 가지로 봤을 때 우리나라 외국인 선발투수로는 되게 괜찮은 선수를 데려왔다”는 말로 산체스가 KBO리그 맞춤형 외국인 투수라는 평가를 했다.
산체스는 지난달 19일 한화와 총액 40만 달러에 계약했다. 1선발로 기대한 버치 스미스가 개막전 2⅔이닝 60구 만에 어깨 통증으로 이탈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자 한화는 시간을 끌지 않고 빠르게 ‘플랜B’를 가동했다. 즉시 데려올 수 있는 대체 선수를 물색한 끝에 산체스를 낙점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은 1시즌 3경기(5⅓이닝)으로 커리어가 화려하진 않지만 마이너리그 8시즌 통산 140경기 중 133경기를 선발로 나서 이닝 소화력이 검증된 투수라는 점에 주목했다.
개막전부터 부상 리스크가 터진 스미스 때문에 머리 아팠던 한화이지만 산체스가 빠르게 그림자를 지워내고 있다. 기대 이상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좋다. 호수비가 나오면 모자 챙을 잡고 야수들에게 인사를 한다. 덕아웃 안에서도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한다. 자신이 던지는 날에는 투구에 집중하기 위해 차분함을 유지하는 투수들이 대부분인데 산체스는 팀이 득점을 내면 야수들과 같이 크게 기뻐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실책이 나와도 개의치 않고 야수를 격려한다.
산체스는 “야구는 그라운드에서 9명의 선수들이 함께한다. 경기를 하다 보면 실책도 나오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 야수들이 실수를 해도 편한 마음을 갖고 뛰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응원한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면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 개인 승리도 좋지만 어떻게든 팀이 이기는 것이 최우선이다”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고, KBO리그 환경도 마음에 든다. 팬들이 열정적이라 더 즐겁게 야구할 수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