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호 한화 감독은 지난 16일 대전 롯데전부터 거포 노시환(23)을 2번 타순에 전진 배치했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이 2번 치는 시대”라고 말하며 메이저리그식 강한 2번타자론을 펼쳤지만 사실 고육책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최원호 감독은 “2번 타순에서 공격이 자꾸 끊기고 있다. 우리는 정은원, 노시환, 채은성, 김인환으로 이어지는 타순에서 해결이 안 되면 (많은 득점을 내기) 힘들다”며 타선이 약한 팀 구성상 잘 치는 타자들을 붙여놓는 게 기대 득점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봤다.
그러나 이달 중순까지 폭발적인 기세를 이어가던 노시환의 타격 페이스가 한풀 꺾인 시점이었다. 노시환은 지난 19일 잠실 LG전까지 4경기 연속 2번타자로 나섰지만 볼넷 1개를 빼면 1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20일부터 다시 3~4번 타순으로 돌아갔지만 안타가 나오지 않는다. 앞서 13일 문학 SSG전 7회 4번째 타석부터 21일 잠실 LG전까지 35타석(31타수 무안타 4볼넷) 연속 무안타로 갑작스런 슬럼프에 빠졌다.
노시환 카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한화의 2번 타순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올해 한화는 2번 타순 타율이 1할6푼6리(163타수 27안타)에 불과하다. 팀 내 가장 약한 타자들이 들어가는 9번 타순 타율(.177)보다 낮다. 리그 전체로 보면 2번 타순 타율 1위 SSG(.337)와 비교하면 무려 1할7푼 넘게 낮고, 9위 두산(.222)보다 5푼 이상 떨어지는 수치. 출루율도 2할5푼7리로 10위다.
카를로스 수베로 전 감독 체제에서 2번으로 고정됐던 정은원이 이 타순에서 타율 2할1푼5리 출루율 3할1푼8리로 부진했던 게 뼈아프다. 1번 타순도 확실하게 고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은원이 리드오프로 올라갔고, 조금씩 타격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2번 타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인&트레이드로 영입한 베테랑 외야수 이명기(36)의 공백이 무척 아쉽다. 지난 2월 사인&트레이드를 통해 NC에서 넘어온 이명기는 물음표가 많이 붙은 한화 외야의 뎁스를 더해줄 자원으로 영입됐다. 당시 수베로 감독도 “NC의 2번타자로 좋은 인상을 받은 선수였다”며 테이블세터로 활용할 구상을 드러냈다.
지난 2008년 데뷔 후 1군에서 14시즌 통산 1022경기를 뛰며 타율 3할6리(3587타수 1099안타)를 기록 중인 이명기는 컨택이 검증된 교타자. 3000타석 이상 기준으로 통산 타율 역대 18위, 현역 선수 10위에 빛난다. 특히 2번 타순에서 통산 타율 3할2푼9리, 출루율 3할9푼1리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2번 타순 타율 10위(.219), 출루율 9위(.315)로 최하위권이었던 한화의 맞춤형 카드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명기는 올해 3경기(10타수 2안타 1볼넷) 만에 부상으로 이탈했다. 지난달 7일 대전 SSG전에서 5회 안타를 치고 나간 뒤 2루 도루를 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비골 말단부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왼발로 베이스를 먼저 찍었으나 오른 뒷발이 가속도에 의해 꺾이면서 발목이 부러진 것이다. 이튿날 수술을 받은 이명기는 4~5개월 재활에 들어갔고, 빨라야 8월 후반기에야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다. 개막 이후 두 달째 2번 타순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이명기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드는 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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