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멘탈 싸움이라고 한다. 긴 시즌을 치르다 보면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전 경기가 실시간 중계되는 요즘 시대에는 선수들의 모든 순간이 팬들에 노출된다. 크고 작은 분노와 짜증 섞인 표정, 과격한 행동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때로는 승부욕으로 좋게 포장되곤 한다.
올해로 1군에서 10시즌째 보내고 있는 베테랑 채은성(33·한화)은 예외적인 선수다. 채은성이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 야구가 안 되고 마음이 답답해도 겉으로 표시를 하지 않는다. 몸에 맞는 볼을 당한 뒤에도 웬만해선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게 채은성의 트레이드마크.
지난겨울 LG를 떠나 한화와 6년 최대 90억원에 계약하며 FA 이적한 채은성은 어느 때보다 큰 부담을 안고 야구를 한다. 시즌 초반 불방망이를 휘둘렀지만 팀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고, 지난달 말부터 미니 슬럼프를 겪었다.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하며 운도 따르지 않았다.
지난 10~11일 대전 삼성전에는 왼 엄지 통증으로 2경기를 결장하기도 했다. 손가락 통증이 꽤 오래됐지만 주사를 맞고 꾹 참고 뛰면서 아픈 티를 내지 않았다. 11일 경기 승리 직후에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전격 경질되며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고참으로서 중심을 잡고 놀란 후배들을 다독였다.
12일 문학 SSG전부터 선발 라인업에 돌아온 채은성은 복귀 후 5경기 23타수 7안타 타율 3할4리 1홈런 5타점으로 살아났다. 특히 17일 대전 롯데전에는 연장 10회 2사 1,2루에서 구승민에게 끝내기 중전 안타를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한화의 시즌 첫 끝내기 승리.
경기 후 채은성은 “1점차 어려운 경기를 이겨야 우리 팀에 힘이 더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1경기, 1경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면 팀이 조금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서 일어난 수베로 감독 경질로 선수단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채은성은 팀 분위기에 대해 “어린 친구들이 가슴 아파하긴 했는데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거나 그렇진 않다. 고참 선수들은 많은 이별을 겪어봤다. 이럴 때일수록 선수라면 야구를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평소 나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채은성의 멘탈은 젊은 선수들이 많은 한화에서 보고 배워야 할 교보재와 같다. 그는 “전 그렇게 생각한다. 잘 맞은 타구가 호수비에 잡혀 아쉬운 감정을 표현하면 저한테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 감정을 못 추스른 것이다”며 “어릴 때 화를 내본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잘 풀리는 게 아니더라. 기분을 드러낼수록 아쉬운 것만 계속 생각난다. 안 좋은 건 빨리빨리 털어버리고 다음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표현을 잘 안 한다”고 이야기했다.
좋지 않은 감정은 숨기지만 좋은 감정은 굳이 숨기지 않는다. 끝내기 안타를 친 17일 롯데전도 그랬다. 채은성은 “3경기 연속 연장을 해서 힘들다. 선수들끼리 ‘집에 가자’는 말을 계속 했다. 이겨서 다행이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