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31)에게 지난 17일은 자신의 31번째 생일날이었다. 한국에서 보내는 첫 생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둘러싼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이날 대전 롯데전 경기 전까지 오그레디는 20경기 타율 1할2푼2리(74타수 9안타) 무홈런 8타점 5볼넷 36삼진 출루율 .175 장타율 .162 OPS .337로 말도 안 되는 심각한 수준의 부진에 빠져있다. 당장 방출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성적. 지금까지 KBO리그 역사에서 이 정도로 못한 외국인 타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20경기 이상 뛴 선수 기준으로 지난 1998년 해태 숀 헤어(29경기 타율 .206 무홈런 3타점 OPS .500), 2002년 롯데 크리스 해처(25경기 타율 .162 1홈런 5타점 OPS .426), 2017년 넥센 대니 돈(20경기 타율 .140 1홈런 2타점 OPS .486), 2018년 두산 지미 파레디스(21경기 타율 .138 1홈런 4타점 OPS .443), 2021년 LG 저스틴 보어(32경기 타율 .170 3홈런 17타점 OPS .545), 2022년 LG 리오 루이즈(27경기 타율 .155 1홈런 6타점 OPS .496)가 최악의 외국인 타자 계보를 잇는데 올해 오그레디는 그 이상이었다.
워크에식이라도 나쁜 선수라면 모를까, 오그레디는 1군에서는 물론 2군에 내려가서도 한낮부터 특타를 할 정도로 열심히 한다. 그러나 2군을 다녀온 뒤에도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문학 SSG전부터 3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 들었지만 11타수 1안타 타율 9푼1리 1볼넷 5삼진으로 막혔다.
지켜보는 이들도 안타까울 지경이다. 지난달 23일 오그레디가 2군으로 강등됐을 때 퓨처스 사령탑으로 오그레디를 처음 만난 최원호 한화 감독은 “처음 내려왔을 때만 해도 ‘진짜 심각하다’ 싶었다. 그래도 연습을 하면서 배팅 타이밍이 좋아졌는데 안타 생산이 잘 안 된다. ‘어떻게 그 흔한 바가지 안타도 안 나오냐’ 싶을 정도다. 그런 안타가 하나만 나와도 조금은 풀릴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1군에 다시 올린 이상 당분간 어떻게든 오그레디를 살려 써야 한다. 17일 롯데전에도 오그레디는 7번타자 좌익수로 4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 한국에서 맞이하는 자신의 31번째 생일. 의미 있는 날을 맞아 한 방을 터뜨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한화 덕아웃에 모였다.
2회 첫 타석부터 1사 1,2루 찬스가 오그레디에게 걸렸다. 그러나 응원석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롯데 선발 나균안의 초구 포크볼을 건드려 1루 땅볼을 쳤다. 롯데 1루수 김민수의 2루 송구가 옆으로 살짝 빠지며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 이학주가 송구를 하지 못했고, 오그레디는 2루 주자를 한 베이스 더 진루시키는 데 만족했다. 다음 타자 박정현의 우전 적시타가 나오며 1-1 동점의 작은 발판이 됐다.
4회 두 번째 타석은 맥없는 3구 삼진이었다. 초구 바깥쪽 직구 스트라이크를 바라본 뒤 2구째 몸쪽 높은 직구가 배트가 헛돌았다. 불리한 카운트에 몰리자 3구째 낮은 포크볼에 배트가 따라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7회 1사 주자 없는 3번째 타석에 기다렸던 안타 하나가 나왔다. 롯데 구원 김도규의 2구째 낮은 직구를 잡아당겨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생산했다. 롯데 우익수 윤동희가 잡을 듯 달려들었지만 그 옆에 떨어지는 안타. 보기 드문 오그레디의 안타에 대전 관중들이 환호했고, 1루 덕아웃의 한화 선수들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다같이 안타 세리머니를 했다. 오그레디가 대전 홈에서 안타를 친 것은 지난달 8일 SSG전 이후 무려 39일 만이었다. 시즌 10번째 안타로 타율도 1할3푼(77타수 10안타)으로 소폭 상승했다.
안타 이후 대주자 이원석과 교체돼 덕아웃에 들어온 오그레디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지만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외국인 타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여전해 보였다. 안타 하나로 기뻐할 일은 아니었지만 10회 채은성이 끝내기 안타를 치자 동료들과 함께 물을 뿌리며 기뻐했고, 최원호 감독과 승리 하이파이브를 하며 옅은 미소도 지어보였다.
생일날 안타와 짜릿한 끝내기 승리가 꽉 막힌 오그레디의 혈을 뚫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