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봉을 내려놓고 해설위원이 됐지만 옛 제자들과의 정은 그대로였다.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이 해설위원 신분으로 두산 홈경기를 찾아 옛 제자들과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지난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과 KIA의 시즌 4차전. 경기를 앞두고 두산 1루 더그아웃에 낯익은 풍채의 한 중년 남성이 이승엽 감독과 함께 두산 사전 훈련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올해부터 SBS스포츠 해설위원을 맡은 김태형 전 감독이었다.
김 위원은 두산 왕조 시대를 활짝 연 장본인이다. 감독 부임 첫해(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썼고, 그 사이 통합우승 2회(2016, 2019), 한국시리즈 우승 3회(2015, 2016, 2019)를 해냈다.
김 위원의 통산 지도자 성적은 1152경기 647승 486패 19무 승률 .571로, 김응용(1554승), 김성근(1388승),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 김경문(896승), 김영덕(707승), 류중일(691승)에 이은 최다승 9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9위에 그친 김 위원은 재계약에 실패하며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불과 작년까지 한 배를 탔던 제자들이 그라운드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거리감과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훈련 중인 선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후임자인 이승엽 감독과 두산 전력과 관련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지나가는 선수를 향해 농담 섞인 조언을 툭툭 던지며 특유의 호쾌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훈련을 마치고 김 위원을 향해 먼저 말을 거는 선수도 있었다. 양석환과의 대화가 가장 유쾌했다. 양석환이 김 위원에게 “원포인트 레슨 좀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하자 김 위원은 “레슨은 무슨”이라고 웃으며 “이제는 내가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내야 레슨을 해줄 수 있다”라고 껄껄 웃었다. 그러자 양석환은 “학연으로 그냥 해주시면 안됩니까”라고 답하며 더그아웃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 위원과 양석환은 신일중-신일고 선후배 사이다.
곧이어 주장 허경민이 등장했다. 허경민은 김 위원을 보자마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타격을 준비할까요”라고 물었다. 이어 “감독님과 수훈선수 인터뷰를 한 번 해야하는데요”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 위원은 “내가 감독할 때는 (허)경민이가 저런 농담을 하나도 안 했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예전에는 내 앞에서 농담하면 엔트리에서 빠질까봐 못했다고 하더라”라며 또 한 번 껄껄 웃었다.
이날 경기는 두산의 6-1 완승. 허경민은 1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 1볼넷 2득점으로 승리에 기여했고, 경기 후 SBS스포츠와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전 스승과의 인터뷰가 마침내 성사된 것이다. 소원을 성취한 허경민은 “드디어 감독님과 인터뷰를 했다. 오늘 경기는 내가 나가서 득점으로 이어진 부분이 만족스럽다. 승리하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라고 아이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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