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난 11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삼성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카를로스 수베로(51) 한화 감독이 기자들을 만나 10분가량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한화는 최근 5경기 4승1패로 상승세를 타며 탈꼴찌에 성공했고, 수베로 감독도 한결 여유 있는 모습으로 취재진과 대화했다.
전날(10일)에만 해도 2군에 있는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의 복귀 날짜가 11일은 아니라고 했는데 말과 달리 1군에 올린 것에 대해 “내가 조만간(Soon)이라고 하지 않았나”며 웃어넘겼다. 오그레디 표정이 밝아 보인다는 말에는 “수염 때문에 그런가?”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가벼운 농담이 끝난 뒤에는 선수와 팀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답했다. 전날 7회 1사까지 노히터로 막으며 승리를 이끈 선발투수 펠릭스 페냐에 대해선 “스트라이크존을 잘 공략했다. 존을 공략하는 적극성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강민호에게 홈런을 맞고 노히터가 깨진 순간을 두고선 오히려 칭찬을 했다. “홈런은 강민호가 잘 친 것이다. 영리하고 수싸움에 능한 타자다. 페냐는 투볼에서 직구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최상의 공을 던졌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 또 변화구를 던졌으면 카운트가 불리하게 몰리는 투구를 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승부 들어간 것을 좋게 봤다”는 것이 수베로 감독의 말이었다.
최근 적중률이 꽤 높았던 수비 시프트에 대해서도 수베로 감독은 “선수들이 시프트에 적응을 잘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지난해 같은 경우 투수들이 시프트에 반하는 로케이션으로 타구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 게 많았다. 올해는 그게 많이 줄었다. 투수들의 제구도 한 몫 한다”고 답했다.
이날 KBO리그 데뷔전을 갖는 새 외국인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도 4이닝 65구로 제한했다. 수베로 감독은 “첫 등판인 것을 감안해 선택 상황이 있으면 보수적으로 운용할 것이다”며 바로 뒤에 남지민을 붙이겠다고 예고했다.
브리핑이 끝나면서 수베로 감독은 취재진을 향해 “왜 노시환 질문이 없나? 어제 홈런 2개 쳤는데”라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시환은 그 전날(10일) 삼성전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미 이날 경기 전 수베로 감독이 “노시환은 지금보다 보여줄 게 훨씬 많은 선수”라며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한 뒤라 취재진이 다음날 추가로 또 물어볼 게 없었다.
“왜 노시환 질문이 없냐”는 말이 수베로 감독의 마지막 공식 코멘트가 되고 말았다. 이날 삼성전을 4-0으로 승리하며 2연승, 위닝시리즈에 성공했지만 수베로 감독은 경기 후 감독실을 찾은 구단 수뇌부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밤 9시가 다 된 시간.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경질이 된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구단에서 3년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레임덕이 찾아온 수베로 감독 교체 논의가 진행됐고, 이날 오후 최종 결정이 났다. 퓨처스 팀을 이끌던 최원호 감독의 정식 1군 감독 선임과 맞물려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고, 수베로 감독에겐 부득이하게 경기 직후 알릴 수밖에 없었다.
한화 선수들은 12일부터 열리는 SSG전 원정을 위해 인천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수베로 경질 속에 선수들은 충격을 받았다. 수베로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지만 미디어에 전하는 승장 코멘트는 따로 없었다. 팬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못한 채 씁쓸하게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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