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플랜B가 대박을 칠 것 같다. 버치 스미스를 방출하고 발 빠르게 데려온 리카르도 산체스(26)가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며 한화 마운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날 경기 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산체스에겐 기묘한 하루가 됐다.
산체스는 지난 11일 대전 삼성전에 선발등판, 4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화 승리에 발판을 마련했다. 첫 등판이라 관리 차원에서 4이닝 53구만 던지고 내려가며 데뷔전 승리는 놓쳤지만 한화의 4-0 승리에 발판을 마련한 투구였다.
1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13개의 공 모두 패스트볼로만 던지며 빠르고 공격적인 승부를 들어가며 삼자범퇴로 시작한 산체스는 2회 호세 피렐라에게 시프트 빈곳으로 빠지는 안타를 맞았지만 김태군을 유격수 병살타로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3회에는 변화구 구사 비율을 높여 내야 땅볼 3개를 유도했다. 3회까지 40구로 효율적인 투구를 이어간 산체스는 4회 강한울 상대로 KBO리그 데뷔 첫 삼진도 잡았다. 1~2구 연속 커브로 카운트를 잡은 뒤 3구째 낮은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뺏어냈다.
이어 이재현에게 볼넷과 도루 허용, 구자욱의 안타로 이어진 1사 1,3루에서 피렐라를 1루 땅볼, 오재일을 유격수 뜬공(2루 위치 포구) 처리하며 실점없이 4이닝 투구를 마무리했다. 총 투구수 53개로 스트라이크 34개, 볼 19개. 최고 152km, 평균 150km 직구(29개) 중심으로 커브, 슬라이더(이상 8개), 체인지업(5개), 투심(3개) 등 5가지 구종을 구사했다.
짧은 인터벌로 빠르게 공격적인 승부를 들어가며 시원시원한 투구 템포가 돋보였다. 스트레이트 볼넷이 하나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제구도 존을 크게 벗어나는 공은 별로 없었다. 병살타 하나 포함 내야 땅볼 아웃만 6개. 스카우팅 리포트대로 땅볼 유도 능력도 돋보였다. 이날 유격수로 출장한 문현빈이 땅볼 3개와 시프트 뜬공까지 4개의 아웃을 잡아내며 산체스를 도왔다.
이제 첫 경기를 했고, 그마저 투구수를 풀로 채운 것은 아니었다. 몇 경기 더 지켜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한화가 기대한 공격적인 투구 패턴으로 이닝 소화 능력을 보여줬다. 펠릭스 페냐, 장민재, 김민우, 문동주, 남지민으로 선발진이 우완 일변도였는데 좌완 산체스가 들어와 밸런스도 맞춰졌다.
경기 후 산체스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자신감을 갖고 던졌고, 긴장되거나 예민한 것도 없었다. 안타와 볼넷을 내주기도 했지만 경기의 일부분이다”며 “수베로 감독님과 호세 로사도 투수코치가 ‘KBO리그는 만만한 팀이 없다. 매 경기마다 굶주림을 갖고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투구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그 말대로 실천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 후 수베로 감독은 전격 경질됐다. 3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맞아 성적 부진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수베로 감독과 함께 한화에 온 로사도 투수코치도 같이 떠난다. KBO리그에 데뷔한 날 감독과 담당 코치가 동시에 물러난다. 만나자마자 이별. 성공적인 데뷔전이었지만 산체스로선 마냥 웃지 못할 기묘한 하루였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