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가 넘어 감독이 갑자기 경질됐다.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감독 경질 소식을 들은 선수단도 충격 속에 원정길에 올랐다.
한화는 11일 대전 삼성전에서 4-0으로 승리했다. 새 외국인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가 4이닝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KBO리그 데뷔전을 치른 가운데 김인환의 선제 결승타와 노시환의 쐐기 홈런으로 투타 조화 속에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다. 삼성전 위닝시리즈 포함 최근 6경기 5승1패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오후 6시30분 시작해 8시49분에 끝난 경기. 그러나 경기 후 한화 프런트가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찬혁 대표이사, 손혁 단장이 정장을 입은 채 감독실로 향했고, 이 자리에서 수베로 감독에게 계약 해지 결정을 알렸다. 3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수베로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수베로 감독은 곧바로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단과 작별 인사 시간을 가졌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12일부터 SSG 상대 인천 원정 이동을 위해 준비하던 선수들도 갑작스런 소식에 깜짝 놀랐다. 몇몇 선수들은 눈물을 흘렸고, 충격 속에 인천 원정길에 올랐다. 경기 전 인천으로 먼저 이동한 선발투수들은 수베로 감독과 인사도 하지 못했다.
수베로 감독의 경질은 사실 예견된 일이다. 리빌딩을 위해 한화에 왔지만 지난 2년 연속 10위로 추락했고, 육성 성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구단 내부적으로도 교체를 심도 있게 논의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재신임이 결정됐다. 그러나 올 시즌마저 4월 개막 첫 달부터 팀 성적이 급락했다. 지난달 26일 사직 롯데전부터 2일 잠실 두산전까지 6연패를 당하면서 수베로 감독 교체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룹의 재가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 사이 한화는 3일 잠실 두산전부터 6경기 5승1패로 상승세를 타며 9위로 탈꼴찌했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11일 오후 감독 교체와 관련한 최종 재가가 떨어졌고, 이날 오전 11시 시작한 2군 퓨처스리그 상무와의 경기를 마친 최원호 감독이 갑작스런 미팅 호출을 받고 오후 4시쯤 대전으로 넘어왔다.
손혁 단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 감독은 1군 감독직을 제의받았다. 계약 조건을 맞추는 사이 오후 6시30분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경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수베로 감독에게 계약 해지 통보는 경기 후에 이뤄졌다. 경기 후 밤 늦은 시간이라 타이밍이 아쉽지만 결정이 내려진 이상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한화 관계자는 “수베로 감독 교체 논의는 지난해 시즌 후에도 있었다. 지난달 연패 기간 다시 논의를 한 뒤 오늘(11일) 최종 결정했다. 그동안 선수들을 관리하며 리빌딩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이기는 야구를 해야 할 시기다. 아직 타순이나 수비 포지션 등 여러 부분에서 실험적인 운영이 현재 구단 방향과 맞지 않았다. 더 늦게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아직 5월 중순으로 시즌이 113경기나 남은 시점이라 성적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원호 감독을 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다.
지난 2020년 11월 한화 제12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수베로 감독은 3년간 319경기를 이끌며 106승198패15무 승률 3할4푼9리의 성적을 남겼다. 올해는 11승19패1무 승률 3할6푼7리로 9위에 오른 상황에서 물러났다. 이날 경기를 이겼지만 어수선한 상황으로 인해 수베로 감독은 ‘승장’ 코멘트도 남기지 못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