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영원한 야구인’으로 남고 싶은 백인천, 모처럼 즐거운 야구장 나들이
OSEN 홍윤표 기자
발행 2023.05.04 09: 01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약간 어눌한 기색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2년 전 뇌경색으로 다시 쓰러져 투병 중일 때와는 통화음만으로도 확연히 구별될 정도로 딴판이었다.
‘4할의 전설’ 백인천(80) MBC 청룡 초대 감독이 모처럼 야구장 나들이를 했다. 4월 30일, 천안 북일고 야구장에서 열렸던 제19회 천안흥타령기 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결승전(서울 가동초-도곡고)에 앞서 시구를 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긴 했으나 그는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시구했다. (시타는 박상돈 천안시장) 백 감독은 지난해 9월 그동안 지내왔던 평택에서 천안으로 거처를 옮겼다.

“천안에 온 뒤로 가끔 야구장에 나왔어요. 건강? 덕분에 좋습니다”라고 근황을 알린 그는 “초등학교 야구 선수들의 폼이 완전히 프로폼이네요. 치는 것도, 던지는 것도 그렇고, 아주 대단해요”라며 다소 들뜬 목소리로 현장 분위기를 전해줬다.
백인천 감독은 1982년 MBC 청룡 초대 감독 겸 선수로 그해 4할 1푼 2리라는 불멸의 타율을 남겼다. 삼미 슈퍼스타즈를 거쳐 1990년 MBC 옷을 갈아입은 LG 트윈스 창단 감독을 맡은 그는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야구 인생의 정점에 섰다. 백 감독은 그 후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을 역임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고, 삼성 시절에 겪은 뇌졸중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국프로야구는 6구단 체제로 출범했다. 첫해엔 코칭스태프라고 해봐야 구단마다 감독과 투수, 타격코치 각 한 명씩 모두 3명이 고작이었다. 출범을 나란히 했던 6개 구단의 감독 가운데 현재 생존해 있는 이는 백인천과 박영길(82. 롯데) 두 원로뿐이다. 그때 코치들도 태반은 작고했다.
서영무 삼성, 김동엽 해태 타이거즈, 박현식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에 이어 지난 1월 21일 OB 베어스 김영덕 감독마저 세상을 떠났다.
투병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던 2년 전에 만났을 때, 백인천 감독은 “나이 먹고 갈 때가 되니 요즘 하느님한테 드리는 기도는 모든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스르륵 조용히 떠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게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면서.
그러면서도 백 감독은 자신의 거처를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좌우명 ‘노력자애(努力自愛)’를 쓴 사인 공과 소형 기념 배트를 선물하곤 했다.
천상 야구인인 백인천 감독은 이번에 초등학교 야구대회 나들이로 여전히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주위에 확인시켜주었다. 그의 야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에 가면 연락 한 번 할게요”라는 그의 약속이 그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사진. (위) 백인천 감독의 시구 장면(제공=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중간)1990년 LG 트윈스가 한국시리즈에 우승했을 당시의 백 감독 모습.
(아래) 백인천 사인 공과 소형 기념 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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