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는 선수가 단 1명에 불과한 비정상적인 상황. 그런데 이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롯데는 기적을 이끌어냈다. 작두 탄 투수 교체 타이밍으로 불펜 운영을 펼친 결과, 8연승이라는 거짓말 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롯데는 지난달 30일 사직 키움전에서 5-3으로 재역전승을 거뒀다. 롯데는 이로써 8연승을 질주했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리그 최강의 에이스 안우진까지 격파하면서 롯데는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롯데의 마지막 8연승은 지난 2010년이었다. 2010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8연승을 거둔 뒤 4705일 만이다. 아울러 시즌 14승8패 승률 .636으로 이날 두산에 패한 SSG(15승9패, 승률 .625)를 제치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롯데가 20경기 이후 단독 1위로 올라선 것은 지난 2012년 7월 7일(72경기 39승39패3무, 승률 .565) 이후 3949일 만이다.
롯데의 4월은 자칫 악몽이 될 수 있었다. 댄 스트레일리와 찰리 반즈, 외국인 선수 듀오가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두 선수는 단 한 번도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지 못했다. 6회는 커녕 5회도 버티지 못하는 경기들이 부지기수였다.
나머지 박세웅과 한현희의 토종 선발들도 아쉬움이 짙었다. 나균안이 선발진을 지탱하면서 가까스로 선발진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았다. 나균안은 단순히 선발 투수의 몫을 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4월 한정, 리그 최고 에이스급 투수의 기록을 남겼다. 나균안은 4월 한 달 간 5경기 4승 평균자책점 1.34(33⅔이닝 5자책점)으로 호투했다. 8연승 기간 동안에도 2경기 평균자책점 1.20(15이닝 2자책점)의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선발진이 궤멸된 상황에서 롯데가 8연승까지 한 이유, 결국 불펜 운영 덕분이다. 롯데는 선발진의 부진을 불펜진으로 채웠다. 불펜은 8연승 기간 동안 0.81(33⅓이닝 3자책점)으로 짠물투를 펼쳤다.
구승민과 김원중의 필승조 라인은 4월 극초반의 부진을 딛고 빠르게 정상궤도를 찾았다. 여기에 베테랑 김상수가 회춘의 피칭을 펼치면서 필승조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선발진이 빠르게 내려간 뒤 1~2이닝 가량을 소화하면서 불펜의 중간다리 역할을 3년차 특급 좌완, 김진욱이 완벽하게 해냈다. 사실 김진욱이 없었다면 불펜진의 과부하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진욱은 그 어렵고 까다로운 역할을 수행했다. 윤명준과 신정락 등의 베테랑 방출생 선수들도 위기의 순간 구세주 역할을 했다. 최준용도 개막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다시 돌아와서 힘을 보탤 준비를 하고 있다.
래리 서튼 감독은 “김원중이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또 구승민 김원중이 잘 던져주고 있지만 베테랑 선수들의 활약 덕분에 이 두 선수를 매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베테랑 선수들이 다리 역할 뿐만 아니라 필승조 역할까지 해줬다. 다른 필승조 투수들을 아낄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배영수 투수코치가 전권을 쥐고 실시하는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도 짠물 불펜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위기 상황이 닥치기 전에 배영수 코치는 이닝 쪼개기를 통해서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운영이 빛을 발휘했다. 서튼 감독은 “배영수 코치와 경기 중에 대화를 많이 한다. 배영수 코치와 생각,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비슷하다. 그래서 서로의 말에 동의를 많이 하고 있다”라면서 “배영수 코치의 투수 교체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언제 투수를 좀 더 지켜볼지, 언제 이 투수를 교체할지에 대한 시점을 배영수 코치가 잘 판단해주고 있다.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빠른 결정도 내릴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언제까지 이런 불펜 운영으로 시즌을 치를 수밖에 없다. 불펜진에 부담이 쏠린 현 상황을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선발진이 필수적으로 반등을 해줘야 향후 과부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스트레일리와 반즈 외국인 선수들이 반등하는 게 필수적이다. 외국인 선수 교체 등 결단이 빠르게 이뤄진다면 투수진은 더욱 안정 궤도를 찾을 수 있다.
‘탑데’에 오른 롯데, 과연 지금의 기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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