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것 같았던 한화에 또 한 번 잔혹한 4월이 지나갔다.
한화는 지난 주중 사직 롯데전 2연패에 이어 주말 대전 NC전에서 3연패를 당하며 5전 전패를 기록했다. 시즌 최다 5연패에 빠지며 4월 24경기를 6승17패1무 승률 2할6푼1리로 마쳤다. 순위도 지난달 21일부터 10위로 떨어졌다.
지난 2020년부터 최근 3년 연속 10위로 최하위였던 한화는 지난겨울 FA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전력 보강을 했다. 검증된 강타자 채은성에게 구단 역대 최고액(6년 90억원)을 투자하며 7년 만에 외부 FA 영입으로 지갑을 열었다. 투수 이태양, 내야수 오선진에 이어 외야수 이명기도 사인&트레이드로 영입했다.
2년차를 맞이한 문동주와 특급 신인 김서현이 파이어볼러 듀오를 결성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도 커졌다. 시범경기 1위(9승3패1무 승률 .750)로 오랜 패배 의식을 걷어내며 기분 좋게 정규시즌을 맞이했다. 객관적인 전력은 하위권으로 평가됐지만 더 이상 쉬운 팀이 아닐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개막전부터 외국인 투수 버치 스미스가 2⅔이닝 60구 만에 어깨 통증으로 자진 강판하면서 장밋빛 희망이 산산조각났다. 개막 2연전에서 키움에 연이틀 끝내기 충격패를 당했고, SSG와의 대전 홈 개막 시리즈에도 첫 2경기에서 8~9회 역전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잡을 수 있는 경기들을 자꾸 아깝게 놓치면서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스미스가 복귀를 미루며 방출된 사이 마운드에 부담이 가중됐고, 외국인 타자 브라이언 오그레디마저 삼진 기계로 전락하며 2군으로 내려갔다. FA 모범생이 된 채은성과 거포 노시환이 타선을 이끌었지만 나머지 타자들이 침묵했다. 디테일이 모자란 수비 실수가 반복됐고, 4월 마지막 주에는 우리가 알던 그 무기력한 한화로 완벽하게 돌아갔다.
한화는 암흑기 내내 4월 개막 한 달간 초반 레이스에서 밀려 시즌 내내 밑에서 힘겨운 순위 싸움을 해야 했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14년간 4월까지 승률 5할을 넘긴 시즌은 2015년(13승11패 .532)이 유일하다. 올해는 2021년(9승14패 .391), 2022년(9승16패 .360)보다 더 못하다. 지난 2016년(6승17패 .261) 이후 가장 부진한 4월 출발이다.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큰 시즌이었기에 팬들의 실망감은 물론 내부에서 느끼는 당혹감도 크다. 3년 계약 마지막 해를 맞아 이기는 야구를 선언했던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도 잠 못 이루는 봄을 보내고 있다. 수베로 감독은 30일 NC전을 앞두고 “요즘 생각이 많아져 밤잠을 설친다. 이 역시 야구의 일부분이다”며 답답한 마음을 넌지시 표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감독만 15년을 지낸 ‘육성 전문가’였던 수베로 감독은 한화 리빌딩 사명을 안고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부임 후 2년간 성적은 성적대로, 육성은 육성대로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10개 구단밖에 없고, 선수풀이 좁은 KBO리그 구조상 애초에 성적을 포기하고 전면 육성 기조를 택한 구단의 방향 설정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시즌 후 경질 위기를 딛고 재신임을 받은 수베로 감독은 그러나 계약 마지막 해 4월부터 레임덕이 왔다. 가뜩이나 재료가 부족한데 주방장 요리 솜씨도 별로라는 평가가 쏟아진다.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더 걱정이다. 새 외국인 투수 리카르도 산체스가 왔지만 타선의 구멍은 쉽게 메워질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오그레디를 방출하자니 또 다른 외국인 투수 펠릭스 페냐도 부진을 거듭하고 있어 진퇴양난. 지금 전력으로 계속 싸워야 할 수베로 감독이지만 레임덕이 가속화되면서 리더십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