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길다, 내심 내려갔으면…" 속내 감추고 에이스 자존심 세우고, 80억 포수의 진심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3.04.28 09: 00

“내심 내려가길 바랐다.”
롯데 자이언츠 나균안(25)은 지난 27일 사직 한화전에서 ‘인생투’를 펼쳤다. 8이닝 4피안타 1사구 7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 투구수는 107개였다. 아직 시즌 극초반인 4월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많은 투구수라고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나균안의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수이자 최다 이닝 경기였다.
매 이닝 순항을 이어가던 나균안이었고 이닝 당 최다 투구수가 15개였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이닝을 끌고갔다. 7회가 끝났을 때 투구수는 89개였다. 내심 완봉까지도 내려볼 수 있었던 상황이다. 그렇다고 투구수가 적다고 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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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8회까지 마운드에 올라왔다. 8회 2아웃까지는 무난하게 잡아냈다. 8회 선두타자 문현빈을 3구 만에 중견수 뜬공, 이후 대타 이성곤과 8구 접전 끝에 헛스윙 삼진을 봅아냈다. 투구수는 이미 100개를 찍었다. 
완봉까지 책임지기에는 투구수가 많아져 있었다. 그래도 8회는 충분히 책임질 수 있었던 상황. 그런데 2사 후 노수광과 2볼 2스트라이크에서 5구 째에 우전 안타를 허용했다. 이미 불어날대로 불어난 투구수.
배영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여차하면 투수교체까지 할 수도 있었지만 배 코치는 심판에게 공을 받지 않았다. 나균안의 의사를 먼저 묻기 위한 것. 배 코치는 나균안에게 “네가 마지막까지 책임질 수 있겠냐”라고 물어봤다고. 이미 불펜에는 구승민이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균안은 “제가 막아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배영수 코치는 포수 유강남과 나균안을 함께 격려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이후 나균안은 2구 만에 김태연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하고 더 이상 위기를 증폭시키지 않았다.
덕아웃 위 1루 관중석에서는 나균안의 환호성이 터지는 순간, 덕아웃에서는 다시금 나균안의 투구 여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었다. 완봉승에 아웃카운트 3개를 남겨두고 있었다. 완봉승이라는 훈장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투수의 의사가 중요했다.
롯데 자이언츠 배영수 코치가 8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으나 나균안과 유강남에게 마지막 한타자를 맏기기로 얘기를 하고 있다. 2023.04.27 / foto0307@osen.co.kr
8회 2사 후에도 의지를 보였고 8회 마운드를 내려오고는 완봉에 대한 의욕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균안은 “8회에 올라가기 전까지도 완봉승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이었다”라면서도 “그런데 8회를 막고 내려오니까 (완봉승)욕심이 생기더라”라는 속마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배영수 코치와 유강남은 “좋을 때 끝내자”라는 의견을 던졌다. 나균안은 아쉬운 속내를 곱씹으면서 결정에 수긍했다. 
나균안과 찰떡호흡을 맞춘 포수 유강남은 사실 당장의 성과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경기 후 만난 유강남은 “사실 8회 2사 잡고 (노)수광이 형에게 안타 맞고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라면서 “시즌 초반 치고도 투구수가 많았다. 시즌은 길다”라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꾸준히 에이스로 활약을 해야 할 나균안의 상태를 걱정했다. 
그럼에도 유강남은 당시에는 투수의 의사를 존중했고 자존심을 세워줬다. 그는 “코치님이 어떻게 하실건지 물어보자 저는 투수에게 결정을 맡겼다. 의사를 존중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마운드 위에서는 투수의 의사가 더 중요하고 그게 자존심이라는 것을 유강남은 알고 있었다. 결국 나균안은 책임감 있게 8회까지 끝냈다. 이후 유강남은 나균안의 9회 등판은 막아세우면서 베테랑 포수로서 역할을 다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4년 80억 원 FA 계약으로 합류한 유강남은 롯데에 완전히 녹아들었었고 믿음직한 선수가 됐다. 하지만 생각처럼 나아지지 않는 투수진에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스스로 책임을 통감했다.
4월 초중순까지 선발과 불펜 가리지 않고 부진하자 유강남도 표정이 어두웠고 책임감을 통감했다. 당시 그는 “긴 시즌을 치르면서 오르락내리락이 있다고 하지만 평균자책점 최하위로 떨어졌을 때 저에게 타격이 컸던 것 같다”라면서 “그동안 마음의 짐이 컸다. 하지만 일부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 상황에서 티를 내고 의욕적이지 않으면 투수진이 더 흔들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때는 일절 얘기 안하고 피드백 정도만 했다.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는 이제 점점 본궤도에 돌입하고 있다. 불펜진은 이미 안정을 찾았다. 나균안은 이미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선발진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 
롯데는 돈으로 셀 수 없는 유강남의 경험과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유강남과 함께 투수진도 더 나아질 수 있는 믿음과 희망, 신뢰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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