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은 천하의 양의지(36)도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두산 선수로 1651일 만에 홈런을 친 양의지가 후배들의 허를 찌른 무관심 세리머니에 당황했다.
양의지는 지난 20일 대전 한화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 3타수 1안타 2타점 1볼넷 1사구로 3출루 활약을 펼치며 두산의 5-1 승리를 이끌었다.
조수행의 투런 홈런으로 2-1 역전에 성공한 3회 양의지의 올 시즌 첫 홈런이 터졌다. 양찬열의 중전 안타로 이어진 1사 1루에서 한화 선발투수 김민우의 4구째 가운데 낮게 떨어진 135km 포크볼을 무심하게 툭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20m, 시즌 1호 마수걸이 홈런. 스코어를 4-1로 벌린 쐐기포였다.
두산 선수로는 실로 오랜만에 홈런 손맛을 봤다. 양의지가 두산 소속으로 홈런을 친 것은 지난 2018년 10월12일 잠실 NC전 이후 1651일(4년6개월7일) 만이다.
기분 좋게 베이스를 돌고 덕아웃에 들어온 양의지. 그러나 동료 선수들이 양의지를 반겨주지 않고 외면했다. 선배 김재호, 포수 장승현만이 손을 내밀며 가볍게 축하해준 게 전부. 두산 복귀 첫 홈런을 기념한 침묵 세리머니에 양의지도 웃음이 터졌다. 괜히 민망한 듯 외면하던 외국인 투수 라울 알칸타라에게 주먹을 내밀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한 선수에게 하는 ‘사일런트 트리트먼트(Silent Treatment)’로 일종의 신고식이다. 대개 신인급 선수들이 이 세리머니의 대상이 된다. KBO리그에선 외국인 선수에게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양의지 같은 베테랑 선수들에겐 잘하지 않는다. 알칸타라도 “베테랑 선수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데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며 웃었다.
양의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스스로 허공에 하이파이브를 했고, 카메라를 보며 양손으로 V자를 그린 채 기뻐했다. 경기 후 양의지는 “개인적으로 침묵 세리머니는 처음 겪어봐서 당황했다. 혼자 열심히 즐거워했다”며 털어놓은 뒤 “침묵이 끝난 뒤 다들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고 말했다.
시즌 16경기 만에 터진 첫 홈런이라 더욱 기다렸던 한 방이다. 양의지는 “첫 홈런이 늦게 나와 약간 부담이 들었는데 다행이다. 이제는 더 간결하게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안도했다.
지난해 시즌 후 최대 6년 총액 152억원 FA 계약으로 친정 두산에 복귀한 양의지는 이날까지 16경기 타율 3할4푼6리(52타수 18안타) 1홈런 10타점 8볼넷 5삼진 출루율 .452 장타율 .481 OPS .933으로 최고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하고 있다.
지명타자로도 3경기 출장하며 수비 부담을 덜고 체력 안배도 받는 양의지는 “트레이닝 파트에서 관리를 정말 잘해준다. 경기 출장에 전혀 무리가 없다. 몸에 이상이 있지 않는 이상 포수로 자주 나가고 싶다. 또 그게 경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