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클볼은 나중에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안 쓰려고요.”
2023년 KBO 전체 1순위 신인 투수 김서현(19·한화)은 고교 시절부터 최고 156km 빠른 공뿐만 아니라 뛰어난 손끝 감각으로 변화구 구사 능력도 주목받았다. 특히 지난해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레전드 선배들을 상대로 던진 무회전 너클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화 입단 후에도 “기회가 되면 너클볼을 한 번씩 던져보고 싶다”고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퓨처스리그 강화 SSG전에서 7회 조형우 상대로 너클볼을 하나 던졌다. 존 근처로 들어왔는데 조형우가 파울을 쳤다.
19일 대전 두산전을 앞두고 1군에 전격 콜업된 김서현은 “너클볼도 내가 갖고 있는 구종이기 때문에 경기에서 한번은 써보고 싶었다. 배트 위쪽에 맞아 파울이 났는데 선배들이 ‘아직 쓰기에 이르다. 나중에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너클볼은) 안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입단 후 스프링캠프부터 시범경기까지 1군에 있었던 김서현이 시즌 개막을 앞두고 2군으로 내려간 것은 이런 미션 수행의 목적이 있었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김서현의 경우 슬라이더를 굉장히 많이 던진다. 스리볼 노스트라이크에도 슬라이더를 던진다. 타자들이 본인 공을 아예 컨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다. 그러면 직구의 장점을 잃게 된다. 슬라이더보다 좋은 직구를 더 많이 던지라는 의미에서 멀티 이닝도 던지게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퓨처스리그에서 지난 8일 서산 두산전, 16일 강화 SSG전에서 두 번의 2이닝 투구가 있었다. 퓨처스 팀 최원호 감독, 박정진 투수코치는 “투스트라이크 이전까지는 변화구를 아예 던지지 말라”는 미션을 부여했다. 김서현은 “직구로 많이 맞으면서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물어보니 미국에서 이런 식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변화구도 좋지만 직구로 타자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그런 미션을 수행했다”고 돌아봤다.
어린 투수가 변화구를 너무 많이 던지면 구속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변화구도 좋지만 지금은 빠른 공의 장점을 살려 힘으로 승부해야 할 때이고, 김서현도 2군에서 3주의 시간을 보내며 깨달음을 얻었다. 지난 8일 두산전에서는 홍성호에게 153km 직구를 던져 19살 야구 인생 첫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김서현은 “인생 첫 홈런이었는데 맞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0이라는 숫자는 언젠가 깨지기 때문에 불안하다. 깨지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웃었다.
변화구 연마보다 직구 구사 비율을 높이면서 제구를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시범경기에선 5이닝 동안 4볼넷 2사구로 제구가 흔들렸지만 퓨처스리그에선 7이닝 동안 2볼넷 1사구로 개선됐다. 김서현은 “처음에 1군 못 올라온 이유가 제구 때문이었다. 구속은 (기본적으로) 따라주고 있으니 제구를 잡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2군에서 미션을 완수한 김서현은 19일 대전 두산전에서 5-5 동점으로 맞선 7회 구원으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호세 로하스를 유격수 땅볼 처리한 뒤 허경민과 이유찬을 각각 헛스윙, 루킹 삼진을 잡았다. 결정구는 모두 직구. 허경민 상대로는 8구째 공이 몸쪽 높게 솟아오르면서 반사적으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53타석 만에 나온 허경민의 시즌 첫 삼진이 김서현의 데뷔 첫 탈삼진이 됐다. 이유찬 상대로는 4구째 바깥쪽 낮게 꽉 차는 직구가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제구됐다.
1군 데뷔전에서 1이닝 2탈삼진 무실점 퍼펙트. 이날 총 17개의 공을 던졌는데 직구가 11개로 가장 많았다. 슬라이더 5개, 체인지업을 1개 섞었지만 카운트를 잡는 것부터 결정구까지 직구가 가장 잘 통했다. 존 아래 쪽으로 로케이션도 잘 이뤄졌다. 19살 신인 투수의 역대급 데뷔전 임팩트를 남겼다.
이날 김서현의 직구는 KBO 공식 피치트래킹시스템(PTS) 기준으로는 최고 157.9km로 측정됐다. 이유찬 상대로 던진 2구째 공으로 파울이 됐다. 한화를 비롯해 KBO리그 9개 구단이 쓰는 트랙맨 시스템에선 이 공이 160.1km로 측정됐다. 직구 평균 구속은 무려 159km에 달했다. 스리쿼터 팔 각도에서 볼끝이 꿈틀대는 무브먼트에 타자들이 더욱 대처하기 어려웠다. 전성기 임창용을 연상케 하는 뱀직구였다. 너클볼이나 다른 변화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경기 후 김서현은 “2군에서 직구를 많이 쓰다 보니 자신감이 붙어서 더 많이 쓰게 됐다”며 “160km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와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최고 구속 기록을 깨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제구 때문에 2군에 내려갔기 때문에 밸런스 안정에 신경쓰고 있다. 구속 욕심은 안 부리고 있다. 오늘 같은 경기가 매일 있을 수는 없겠지만 꾸준하게 갈 수 있도록 살아남아 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