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1-2로 뒤진 5회 초다. 2사 1, 3루. 원정 팀의 득점 기회다. 타석의 손아섭이 위협적이다. 문제는 카운트가 1-2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18일 잠실 LG-NC전)
신중한 4구째를 앞두고 있다. 투수 함덕주가 오른발을 올린다. 결정구를 던질 듯하더니, 돌연 1루로 쏜다. 기습적인 견제다. 화들짝. 주자가 걸려들었다. 역동작으로 무너진다. 이미 돌아가기는 늦었다. 에라, 모르겠다. 냅다 2루로 달린다. 그냥 놔둘 리가 있나. 1루수가 전력으로 쫓는다. 목적지 앞에서 검거 완료다.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진다. 하지만 분위기가 묘하다. 뭔가 쎄~한 느낌이다. 아뿔사. 반대편을 깜빡했다. 어느 틈에 3루 주자(도태훈)가 홈으로 날아들었다. 스코어는 2-2로 공평해졌다. 이날 승부가 바뀐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이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쩍 달리기를 강조하는 트윈스 아닌가. 그런 팀을 디테일로 무너트렸다. 특히 개막 초반의 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작전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9일 LG-삼성전 때다. 2-2 동점이던 8회 말 트윈스가 2사 2, 3루의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2루 주자(김현수)가 의도적으로 투수 견제에 걸렸다.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노린다는 기획이다. 이른바 ‘심청이 작전’이다.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드는 효녀를 오마주한 시나리오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3루 주자의 리드폭과 스킵 동작이 부족했다는 분석이었다. 이 때문에 염경엽 감독의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결국 연장 10회에 폭발하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이른바 ‘염갈량 극대노’ 사건이다.
이날 다이노스의 플레이는 비슷한 작전이다. 상황만 2, 3루가 아니고 1, 3루일 뿐이다.
공격 쪽은 불리한 카운트가 되자 달리기로 승부를 본다. 일단 1루 주자가 리드 폭을 키운다. 상대의 픽-오프를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다. 마침 좌투수 함덕주의 훤한 시야에 노출된다. 반면 3루 주자는 가시권 밖이다. 한결 여유롭다.
드디어 큐 사인이 나왔다. 상대가 못 참고 예리한 견제를 날린다. 여기서부터 연기력이 중요하다. 1루 주자는 심청이가 돼야 한다. 놀라는 척. 당황한 척. 인당수를 찾아 황급히 2루로 달린다. 와중에 혼신의 매소드 연기까지 선보인다. 잠시 비틀.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척. 고전적인 슬랩스틱이다.
수비가 걸려들지 않을 수 없다. 오스틴 딘이 앞뒤 안 가리고 따라붙는다. 물론 이것 역시 다이노스의 기획안에 포함된 요소다. 그는 전문 1루수가 아니다. 게다가 이런 디테일과는 덜 친한 리그 출신이다. 그런 점도 작전의 깊이를 더한다.
아무튼. 오스틴 딘이 ‘런닝맨’을 찍는 순간이다. 3루에서는 어느 틈에 스타트가 이뤄졌다. 도태훈이 한 달음에 홈까지 내닫는다. 상대는 승부해 볼 타이밍도 없다. 소중한 동점 득점이다. 트윈스 덕아웃은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작전 성공을 확인한 순간이다. 심청이는 더 이상 무리할 필요가 없다. 2루에서 고분고분 태그를 받아들인다. 맡은 역할을 100% 완수했다. OK 컷이 떨어졌다. 1타점짜리 도루 실패다.
이어진 공수 교대 때다. 그의 얼굴이 화면 가득 담긴다. 만족스러운 얼굴에 혀가 ‘빼꼼’ 등장한다. 물론 어떤 의도가 있는 표정은 아닐 것이다. 다만 상황이 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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