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13일 광주 타이거즈 전이다. 5회 초 이글스가 선취점을 뽑았다. 살얼음 같은 1-0이 계속된다. 6회 말 홈 팀의 반격이 매섭다. 2사 후. 황대인과 최형우의 연속 안타가 터졌다. 1, 2루에서 김선빈의 타석이다. 삐끗하면 동점이다.
이글스 벤치가 타임을 건다. 투수코치를 보내 식히는 시간을 갖는다. 짧은 마운드 미팅이 끝났다. 투구수는 이제 겨우 74개다. 구심의 속행 사인이 떨어진다. 그런데 그가 잠시 멈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기도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간절한 1구, 1구가 뿌려진다. 커브→포크→다시 커브. 카운트 2-1에서 4구째다. 125㎞짜리 포크볼이 떨어진다. 김선빈의 배트도 따라붙는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뒤쪽으로 날아간다. 어느 틈에 중견수(오그레디)가 달려나왔다. 3번째 아웃이 만들어진다.
이 경기는 결국 5-1로 끝났다. 면도날 장포크의 시즌 첫 승도 이뤄졌다. 6이닝 6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지켜낸 승리다.
지난 한 주간 야구계가 떠들썩했다. 문동주의 160㎞짜리 패스트볼이 장안의 화제였다. 여기에 못지 않은 안우진의 파워도 불을 뿜었다. ‘이제 우리도 일본 부럽지 않다.’ ‘김서현도 있다.’ 그런 기대감이 팬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이런 찬란함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게 있다. 혼신을 다하는 장민재의 일구(一球)다. 겨우 130㎞대의 벡터(vector)량이다. 최대치도 기껏 138㎞ 남짓이다. 리그 평균치(143㎞)에도 한참 못 미친다. 그런 공으로 선발 한 자리를 충분히 지켜낸다. 두 번의 등판을 11이닝 2실점(ERA 0.82)으로 책임졌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입만 열면 칭찬이다. 진작에 로테이션 한 자리를 주지 못한 자신을 질책할 정도다. 스프링캠프에서는 심지어 개막전 선발 후보로도 거론했다. 그만큼 그의 정확성과 예리함, 그리고 성실성과 팀에 대한 헌신을 높게 평가했다.
화려함이 넘치는 계절이다. 멋진 컬과 웨이브를 휘날리는 투수들에게 갈채가 쏟아진다. 150㎞, 160㎞의 박력에 감탄이 폭발한다. 그러나 그런 시대를 버티는 단단함도 있다. 스타일과 숫자 따위는 너끈히 이겨내는 의연함이 있다. 140㎞도 안되는 빠르기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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