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속구 군단’으로 탈바꿈한 한화에는 ‘느림의 미학’도 있다. 베테랑 우완 투수 장민재(33)의 존재감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장민재는 지난 13일 광주 KIA전에 선발등판, 6이닝 6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올렸다. 투구수 78개로 6이닝을 소화하며 시즌 첫 퀄리티 스타트에도 성공했다. 한화의 시즌 첫 위닝시리즈를 이끌면서 기쁨이 두 배가 됐다.
이날 장민재는 최고 구속은 138km. 전날(12일) 같은 팀 후배 투수 문동주가 KBO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의 ‘피치트래킹시스템(PTS)’ 기준으로 한국인 투수 최초 160km를 던지면서 화제가 된 가운데 다음날 마운드에 오른 장민재의 직구는 140km도 넘지 않았다.
파이어볼러 영건들의 등장으로 리그 전체에 구속 혁명이 일어나고 있지만 장민재는 느린 직구(평균 137km)로 선발 로테이션을 도는 몇 안 되는 투수 중 한 명이다. 리그 평균(143km)에도 못 미치는 직구 구속이지만 장민재에겐 남들에게 없는 핀포인트 제구력과 포크볼이라는 확실한 결정구가 있다.
이날 KIA를 상대로도 직구(28개)보다 포크볼(38개)을 더 많이 던졌다. 삼진 6개 중 5개를 포크볼로 잡아냈다. 투스트라이크를 잡으면 여지없이 떨어지는 포크볼로 배트를 유인했다. 타자들은 알고도 배트를 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포크볼이 잘 떨어졌다.
역으로 가져가는 볼 배합도 돋보였다. 3회 1사 1,2루 위기에서는 1~2구 포크볼에 박찬호의 배트가 따라나오지 않자 3구째 몸쪽 직구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병살로 이닝을 끝냈다. 5회 김호령에겐 4~5구 바깥쪽 포크볼로 유인한 뒤 6구째 몸쪽 낮은 138km 직구로 루킹 삼진 처리했다. 포크볼뿐만 아니라 카운트 잡는 용도로 쓴 커브도 효과적이었다.
장민재는 지난해 외국인 투수들의 부상으로 4월 중순 대체 선발 기회를 잡은 뒤 시즌 끝까지 로테이션 한 자리를 지켰다. 32경기(126⅔이닝) 7승8패 평균자책점 3.55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고, 올해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4선발로 낙점돼 시즌을 준비했다.
파이어볼러 유망주 문동주, 남지민, 김서현이 연이어 입단한 뒤 이적생 한승혁까지 강속구 투수들이 대거 합류했지만 장민재는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 팀에 빠른 공 투수들이 많아졌지만 내게도 남들이 없는 것이 있다. 그걸 장점으로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 있다. 그렇게 (경쟁력) 떨어진다고 생각 안 한다. 내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며 후배들과 경쟁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 자신감이 시즌 들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첫 등판이었던 지난 7일 대전 SSG전에서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5이닝 2피안타(1피홈런) 2볼넷 1탈삼진 1실점으로 좋은 스타트를 끊은 장민재는 두 번째 경기에서 승리하며 평균자책점 0.82를 마크했다. 2년 연속 커리어 하이 시즌을 향해 달려가는 장민재는 올 시즌을 끝으로 첫 FA 자격도 얻는다. FA 가치가 견조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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